“박태준 회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방사광가속기도 없었을 것입니다.” 조무현 포항방사광가속기연구소장은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하루는 당시 포항공대 학장이던 김호길 박사와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실에 들어가 방사광가속기 필요성에 대해 유창하게 설명했습니다.
박 회장은 투입할 액수와 장비 규모 등을 듣곤 `쓸 데 없는 소리하지마`라며 쫓아내다시피 하셨어요. 그래서 `이젠 틀렸나 보다`하고 있었죠. 그런데 얼마 후 다시 회장실에서 불러, 가 봤더니 `가속기인지 뭔지, 그거 추진해. 얼마면 되겠나` 하시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방사광가속기 추진본부가 포철과 포항공대 내에 각각 발족하게 됩니다. 그게 1988년 4월의 얘기에요.”
처음엔 `택도 없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던 박 회장이었다. 하지만 미국이며 일본, 유럽 등 방사광가속기가 있는 나라에 출장갈 때면 철강 관련 본업은 잠시 제쳐두고, 가속기 기술 도입이나 사업비 등을 몰래 꼼꼼히 챙겼다고 한다.
그래서 박 회장은 대한민국이 과학기술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비가 바로 `방사광가속기`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후에도 박 회장과 후임 포철 회장은 추가 투입되는 사업비에 비교적 후한 지원을 계속해줘, 지금의 방사광가속기가 있을 수 있게 했다는 게 포스텍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조 소장은 “방사광가속기 건설 당시 많은 언론에서 무모한 도전이라 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당시 그런 비판이 오히려 박 회장이나 우리에겐 좋은 각성제가 됐다”고 말했다. 방사광 가속기 건설을 지켜봐온 조무현 포항방사광가속기연구소장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고 했다.
김호길 학장은 당시 “단군 이래 최대 프로젝트며 과학기술 발전 필수 장비인 가속기 건설을 절대 실패하면 안 된다”고 했다. 조 소장은 “방사광가속기 설립 주역 두 분은 유명을 달리했지만, 가속기는 하루하루 한국 과학기술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