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36>국민이 지킨 한글<1>

출구는 캄캄했다. 암흑, 그 자체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SW)기업인 한글과컴퓨터(한컴)가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경영 악화로 자금 압박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한컴은 1998년 5월 13일 1차 부도를 냈다. 풍전등화의 처지였다. 이때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투자자로 등장했다. 조건이 있었다. 워드프로세서 `한글`의 개발 중단이었다. 한글 SW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국민이 한글 지킴이로 나섰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한글 살리기 운동이었다.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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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 15일 이찬진 한글과컴퓨터 사장과 김재민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이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美 MS의 한글과컴퓨터 투자계획을 밝히고 있다.<전자신문 DB>

1998년 6월 15일 오전 11시.

서울 롯데호텔에서 이찬진 한컴 사장(15대 국회의원 역임, 현 드림위즈 대표)과 김재민 한국MS 사장(더존디지털웨어 대표 역임)이 긴급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사장의 표정은 무겁고 어두웠다. 회견장은 100여명의 기자로 꽉 들어찼다.

두 사람은 MS가 한컴에 1000만~2000만달러(당시 환율기준 약 130억~260억원)를 투자하고 MS는 한컴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컴은 MS 투자를 받는 대가로 한글 개발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한글 포기선언이었다.

한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MS에 맞서 한국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지켜왔다. 이 발표는 국내 SW 업계와 사용자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동안 한글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경쟁했던 두 회사의 합의는 `적과의 동침`이나 같았다.

이찬진 사장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해마다 30억~50억원의 개발비를 투자해 신제품을 개발했지만 총체적인 경제위기와 불법복제로 인한 경영난으로 더 이상 사업을 계속하기가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투자 유치를 하게 됐다”고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이 사장은 “한컴은 앞으로 보다 경제성 있는 수익사업을 시작하고 특히 인터넷 콘텐츠 사업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민 사장은 “그동안 국내 기업과의 다양한 협력관계를 위해 노력해 왔다. MS는 한국 선두 IT기업인 한컴과 협력해 한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투자규모에 대해 “한컴의 경영 정상화 비용을 대략 산출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않고 1000만∼2000만달러 선으로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찬진 전 사장의 증언.

“그동안 삼성과 대우 등 대기업과 접촉했지만 투자유치에 실패했어요. 그러던 차에 MS가 투자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한컴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2000만달러면 경영 정상화가 가능했습니다. 매디슨조차 처음에는 투자를 거절했어요.”

회견장에서 기자들과 두 사람 간 일문일답이 이어졌다.

-한컴은 한국 SW산업의 대표 업체고 회사 주력제품인 한글은 MS도 넘보지 못할 만큼 한국 시장에서 아성을 쌓았는데 사업을 포기하게 된 배경은.

▲이찬진 사장=해마다 30억~50억원의 자금을 투자하면서 신제품을 개발했지만 SW 불법복제가 워낙 심해 수익성이 좋지 않았다. 올해 공공부문의 워드프로세서 시장에 큰 기대를 걸었는데 경기침체로 수요가 크게 줄어 자금 압박에 시달렸다.

-한컴과 MS는 치열한 경쟁관계인데 사업 파트너가 된 이유는.

▲이찬진 사장=국내외 많은 업체와 접촉했으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기업은 MS 이외에는 없었다. 그래서 자금을 지원받게 됐다.

▲김재민 사장=MS는 더 많은 동반자를 확보하기 위해 한컴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한컴 경영에 직접 참여할 계획은 없다.

-자본투자 방식은.

▲이찬진 사장=신주발행을 통한 증자 형식이다. 한컴 자본금(39억원)보다 많은 금액을 지원받지만 우선주 형식이나 의결권 위임 등을 모색해 최대주주는 바뀌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앞으로의 사업계획은.

▲이찬진 사장=인터넷 콘텐츠 분야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할 계획이다. 한글 개발은 중단하겠다.

▲김재민 사장=한글에서 MS워드로 제품을 교체하는 사용자들을 위해 별도의 SW를 개발할 계획이다. 세부 내용은 나중에 공개하겠다.

당시 이찬진 사장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그는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렸다. 한국 벤처스타 중의 한 사람이었다. 벤처스타는 곧 부(富)의 상징이었다. 그는 대학 재학 중 `서울대 컴퓨터연구회(SCSC)`에서 활동했다. 1988년 체신부가 공모한 우편번호 자동변환 SW공모전에 대학 후배인 김형집, 우원식 씨와 함께 참가해 대상을 차지했다. 이후 이들과 `한글1.0`을 처음 상용화했다.

이 사장의 회고.

“1998년 4월께 제품을 상용화했어요. 곧바로 서울 종로 세운상가의 러브리SW를 총판으로 지정해 제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글1.0을 팔아서 번 5000만원으로 1989년 10월 11일 한컴을 설립했다. 그의 나이 스물 다섯 살이었다. 이후 한컴은 신제품을 출시한 후 승승장구했다. 1991년 매출 10억원을 기록했다. 2년 후인 1993년 매출 100억원을 달성했다. 이때부터 한컴 신화는 시작됐다.

한컴은 1996년 9월 24일 코스닥에 상장했다. 당시 한컴은 `인터넷 3인방` 중의 하나로 불리며 연일 상종가를 기록했다. 주가가 최고 24배까지 치솟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 사장은 1996년 신한국당 15대 전국구 예비후보 2번으로 발탁됐다. 그해 9월 21일 오전 11시 이 사장은 인기 탤런트 김희애 씨와 서울 여의도 63빌딩 코스모스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현 중앙일보 고문)이 맡았다.

그해 12월 22일 이회창 신한국당 명예총재(감사원장, 국무총리 역임)가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했고, 그 뒤를 이어 이찬진 사장이 최연소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 시절이 그에게는 인생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한컴은 1998년 들어 단기 부채로 경영난에 시달렸다. 그는 한컴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1998년 5월 4일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사퇴서는 5월 16일 수리됐다. 6개월여 만의 정치 외도를 청산하고 경영자로 복귀했지만 한컴의 경영은 내리막길을 달렸다. 결과적으로 그는 경영에 허당이었다.

당시 한컴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벤처인 A 씨의 말.

“국내 SW 불법복제가 성행했던 점이 한컴 경영악화의 큰 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방만한 경영도 한몫을 했습니다. 이 사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했지만 그해 5월 13일 1차 부도를 냈어요. 이 사장이 국내 대기업으로 뛰어다니며 투자유치에 적극 나섰지만 모두 외면했어요. 한컴의 미래가치가 낮다고 본 것입니다.”

그해 6월 중순 어느 날. 이찬진 사장과 김재민 사장은 배순훈 정보통신부 장관(현 S&T중공업 회장)을 만났다. 이 사장은 MS의 투자 배경을 배 장관에게 설명했다.

배순훈 장관의 기억.

“두 사람이 장관실로 왔더군요. 이찬진 사장이 `투자를 받지 못하면 부도가 나 구속될 처지였다`고 하더군요. 이 사장에게 `경영을 잘 하지 그게 뭐냐`며 야단을 쳤어요. 그리고 `MS 투자는 잘된 일이다. 이 사장은 능력이 있으니 미국 실리콘벨리로 가서 다시 시작해라. 이 사장은 꼭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이 사장도 부채를 청산하고 미국으로 갈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런 계획은 한글 살리기 운동이 벌어지면서 무산됐어요.”

MS의 한컴 투자로 한글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반발 국민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튿날인 16일부터 천리안과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4대 PC통신에는 한글 포기를 반대하는 네티즌의 항의 글과 모금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글이 넘쳐났다.

그해 6월 18일.

한국에 온 빌 게이츠 MS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63빌딩에서 가진 기회회견에서 “MS의 한컴 투자 계획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6월 19일.

한국벤처기업협회(회장 이민화)가 이날 일간신문의 광고를 통해 성명서를 발표했다. 협회는 성명서에서 “한글 포기는 한국인의 자존심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며, 우리나라 전체 SW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기에 국민적 공감을 얻고 그 해결책을 강구키로 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이어 한글 사용자들에게 “한컴을 살리기 위한 범국민 운동으로 `1인당 1만원내기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이 운동에는 3일만에 1000여명이 동참했다.

협회는 또 정부는 각 기관의 PC에 한글 정품을 구입해 설치하고 SW 불법복제를 근절하는 한편 공정거래 질서 차원에서 MS의 SW 무상배포 등 불공정 거래행위에 단호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민화 회장(매디슨 대표이사, 기업호민관 역임, 현 KAIST 교수)의 말.

“협회 부회장들과 사전에 한컴 살리기 운동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조현정(현 비트컴퓨터 회장, 한국SW산업협회장), 변대규(벤처기업협회 부회장 역임, 현 휴맥스 사장), 장흥순(벤처기업협회장, 터보테크 사장 역임, 현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 등인데 다들 좋다고 했습니다.”

그해 6월 2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미국 MS의 한컴 지분참여 계약이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지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한글 살리기 운동에는 대학생, 공무원 등 각계각층이 적극 동참했다. 나우누리의 `한글 살리기` 서명 란에는 나흘 만에 2000여명이 서명했다. 이런 여론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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