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보서비스 산업협력 콘퍼런스]패널토론

일본은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된다. 하지만 정보서비스 업계에 있어 한·일 양국은 `멀어 보이지만 가까운 나라`였다. 패널토론 참가자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 있지만 공통의 걱정거리를 갖고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토론에는 좌장을 맡은 김상욱 충북대학교 경영정보학과 교수와 박경철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부회장, 다니와키 야스히코 일본 총무성 정보유통행정국 관방심의관, 하마구치 토모이치 일본정보서비스산업협회장이 참석했다.

◇한국과 일본 `다름`에서 배우자

패널토론 참가자들은 정보화 정책에 대한 양국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단점은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양국 협력도 `차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다.

박경철 부회장은 갈수록 소프트웨어(SW)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2030년경에는 산업의 중심이 종전 미국·유럽에서 한국·일본·중국 등 동북아로 이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이 아시아 국가 간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다.

박 부회장은 “지금도 한·일 SW 사업 협력이 일부 추진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황”이라며 “한국과 일본, 나아가 중국을 아우르는 협력 모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욱 교수는 효율적인 협력을 위해서는 우선 양국 간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로 행정 서비스를 정보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일본은 민간 영역의 정보화를 정부가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정부 기능 자체를 정보화 하는 것이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미국도 일본처럼 민간 영역의 정보화 사업을 정부가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췄다”며 “어떤 방법이 현명한 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나라마다 정책 방향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선진국들은 이미 축적한 데이터베이스(DB)가 많아 획기적인 변화가 힘들지만 제3국에 속하는 나라들은 오히려 발전된 형태의 전자정부 구현이 가능하다”며 “아직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원하는 계획에 따라 디자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니와키 야스히코 관방심의관도 한·일 양국의 정보화 사업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일본은 의료, 교육, 농업 분야 등의 정보화에 주력하고 있다”며 “이 부문은 공공성이 높아 시장 원리가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반 산업 영역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경쟁을 통한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니와키 관방심의관은 “한국처럼 전자행정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도 좋은 접근 방법”이라며 “전자행정에서 다른 분야로의 파급효과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재확보`는 공통의 과제

화두는 자연스럽게 `인적자원`으로 넘어갔다. 효율적인 정책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공통 인식 때문이다. 양국 참가자들은 SW 분야가 기피업종이 돼 버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하마구치 토모이치 회장은 장시간 근무하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SW 관련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크지만 긴 근무시간 때문에 좋지 않은 인식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주·수주 업체 간 수평적인 업무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마구치 회장은 “일본은 SW 산업 종사자가 연중 계속해서 장시간 일을 하는 것보다 특정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무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발주 업체가 가하는 업무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후 5시에 업무 협의를 시작했는데 발주 업체가 다음 날 아침까지 결과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며 “사업 추진 일정을 조율하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주 업체가 필요한 SW 사양을 자세히 알리지 않는 관행도 없애야 한다는 게 하마구치 회장의 생각이다. 일본은 특정 SW 제작을 의뢰할 때 `현행대로`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사실상 결정된 것은 소스코드(SW 내용을 프로그래밍 언어로 표현한 설계도)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수주 업체는 세부 사양 결정에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교육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허술한 제도 때문에 전문가 양성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대학은 물론이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정식 교육과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니와키 관방심의관은 “예를 들어 전자정부 구현을 위해서는 IT와 정부 업무를 모두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련 교육을 수행하는 대학이 필요하다”며 “한국의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일본은 이런 부분에 취약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상욱 교수는 “우리나라는 전자정부에 관심 있는 전문가들이 관련 법, 거버넌스, 관리체계에 대한 토론회를 많이 만들고 있지만 정식 학과를 마련한 대학교는 아직 없다”며 “커다란 전자정부 시장이 열리고 있는 시기인 만큼 체계적인 교육과정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염종순 사장은 SW 영역을 세부적으로 나눠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사람이 여러 분야를 담당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염 사장은 “집을 만들 때 목수에게 전체 디자인까지 부탁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프로그래밍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그 분야만 집중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욱 교수는 “한·일 양국이 다르면서도 비슷한 환경에 있어 서로 협업하면 제로섬이 아닌 파지티브섬의 파이를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며 “정보서비스 산업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가능성을 넓게 열어두고 양국이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하자”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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