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50주년]파독 광부·간호사의 역사

지난 1963년 12월 21일. 우리나라 광부 123명이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주 루르탄광지대로 향하는 비행기에 처음 몸을 실으며 파독 광부·간호사의 역사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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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도착한 파독 광부를 환영하는 교민단<자료:주독일대사관>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우리나라에서 7963명의 광부와 1만1057명의 간호사가 각각 독일로 향한다. 일자리 확보가 필요한 우리나라와 해외 인력 수급이 절실한 독일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진 경제 협력이었다. 당시 독일은 NRW주의 제조업을 중심으로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패전을 딛고 일궈낸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이다. 하지만 독일인들이 강도 높은 육체 노동이 필요한 직업을 기피한 탓에 광부와 간호사는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렸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농업 국가에서 탈피, 발빠르게 산업화를 시도하면서 실업률이 급증한다. 과도한 이농 현상으로 농업 인구가 급격히 도시로 유입되자 일자리가 부족해졌다. 지난 1965년 우리나라의 실업률이 무려 7.3%까지 치솟은 이유다.

당시 파독 광부들은 탄광에서 하루 8~16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10만원가량을 받았다. 그맘때 우리나라 5급 공무원 월급은 약 1만원이었다. 파독 광부·간호사가 1965년부터 1975년까지 국내로 송금한 금액은 총 1억153만달러(약 1105억원)다. 연평균 1000만달러가 넘는다. 특히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1965~1967년 사이 송금액 규모는 당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6~1.9%에 달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총 1만9020명의 파독 광부·간호사 중 40%가 귀국하고 20%가량은 독일에 잔류한 것으로 각각 추정된다. 나머지 40%는 유럽, 북미, 제3국가 등에 이주했던 것으로 알려 졌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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