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경제의 최대 화두는 중견기업 육성이다. 지난 1960년대 이후 이어진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가 갈수록 한계를 드러낸 탓이다.
대기업을 보완할 새로운 기업 집단이 나타나지 않은데다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 제조 분야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는 중국의 부상에 밀려 번번히 위기를 맞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주목한 것이 바로 중견기업이다. 대기업 선도 투자에 따른 `낙수 효과`에 의존하지 않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견기업을 육성해 새로운 경제 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커가고, 이들 중견기업이 다시 글로벌 전문기업과 대기업으로 발전하는 성장의 사다리를 만드는 그림이다. 이 과정에서 중견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듣든한 허리(버팀목) 역할을 한다.
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대표적인 정부 정책이 `월드클래스 300` 프로젝트다. 한국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월드 클래스 기업 300개를 육성할 계획이다. 아울러 오는 2015년까지 중견기업 수를 3000개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도 세웠다.
기술혁신 역량과 해외 진출 의지가 강한 중소·중견기업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는 정책이다. 선정된 기업엔 연구개발(R&D), 전문인력, 자금, 해외마케팅 등 다양한 지원책이 패키지 형태로 제공된다.
월드클래스 300 프로젝트의 모태는 바로 독일의 글로벌 전문기업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이다. 히든 챔피언은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1∼3위를 차지하는 중소·중견기업을 뜻한다. 기업 인지도는 낮지만 세계 어느 대기업 못지않은 기술과 경쟁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히든`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독일이 20세기 패전과 분단, 통일 등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면서도 지금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히든 챔피언이 있었다.
1300여개로 추산되는 독일 히든 챔피언 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흔들림없는 위치를 점하며 경제를 뒷받침했다. 독일이 최근 유럽 경제위기 여파를 비켜가는데도 히든 챔피언들이 일조했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히든 챔피언 기업은 △특화된 분야에서 기술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직원 만족을 중시하는 수평적 구조 △적극적인 글로벌 마케팅 △일자리 창출과 지역 발전을 통한 상생 문화 등을 지닌 점이 특징이다.
한국 정부가 독일의 히든 챔피언을 벤치마킹했지만 사실 독일 정부가 직접적인 육성 정책을 펼친 것은 아니다. 히든 챔피언 기업은 연구개발(R&D) 중심 투자를 통해 스스로 자생력을 키웠다.
지난해 가을 독일 히든 챔피언 기업을 방문했던 심영섭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 정책에 의해 히든 챔피언이 육성됐다기 보다는 자생적으로 성장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독일 정부가 손을 놓았던 것은 아니다. 독일 정부는 특정 기업을 지원하기 보다 이들 기업이 공정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경영 활동을 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기업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는 정부 보조금으로 안정화를 지원했다.
히든챔피언 기업은 정부 보조금을 받는 대신 경영이 어렵더라도 고용 유지에 힘썼다. 지역 인재를 고용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 사회에 기여했다.
심 선임연구위원은 “독일과 한국의 경제·사회 환경이 다른 만큼 무조건 독일 정책을 따르기 보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형태로 정책을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한국 중견기업 측면에서는 대기업이 관심을 갖지 않는 영역을 발굴해 세계적 역량을 갖추는 히든 챔피언의 강점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