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아이튠폰이란 게 있었다. 모토로라가 만들고 애플이 기술을 보탰다. 당시 인기절정이던 아이튠스에 연결한 휴대폰이다. 하지만 음악을 내려 받으려면 휴대폰을 PC에 유선으로 연결해야 했다. 불편했다.

그해 미국의 시장조사기업 진먼스터는 `유비쿼터스 아이팟`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애플이 5년 안에 미디어 시장을 독점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초 작업으로 애플이 1~2년 안에 `아이폰`을 내놓을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모바일 기기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다는 의미의 유비쿼터스로 무장하고, 한술 더 떠 휴대폰으로 진화·발전한다면 혁명이다. 언론은 과연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을 것인가에 주목했다.
2006년 애플이 휴대폰을 만들 거란 루머는 더욱 빠르게 확산됐다. 애플 주가가 급등했다. 그러나 그해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 신제품 발표회에선 아이폰이 등장하지 않았다. 연말이 돼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아이폰이 애플 팬을 현혹하기 위한 희대의 사기극이란 말까지 돌았다. 어찌됐든 세계의 관심은 온통 아이폰 등장 여부에 쏠렸다.
아이폰이 베일을 벗은 것은 2007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행사에서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학수고대한 아이폰의 실체가 확인됐으니 미디어는 바빠졌다. 아이폰을 정식 시판한 6월 말엔 세계가 요동쳤다. 애플은 단숨에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올라섰다.
이후 애플이 매년 신제품을 공개할 때마다 세계 각국의 취재기자 1000여명이 행사장이 있는 미국으로 모여들었다. 광고비 한 푼 쓰지 않고 애플은 연일 대서특필됐다. 세계 시장 점유율 수위 업체만이 누릴 특권을 애플은 만끽했다. 후발업체 입장에선 이 같은 편파적 행태에 눈물을 훔칠 일이다. 그래도 이건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 14일 삼성전자가 애플의 안방인 미국에서 갤럭시S4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명칭은 삼성 모바일 언팩행사다. 삼성이 외국에서 모바일 언팩 행사를 가진 건 2009년 이후 이번이 9번째다. 작년 6월엔 영국 런던에서 갤럭시S3를 발표했다. 지난해 행사는 54개국, 115개 채널에서 생중계됐다. 신제품 발표 행사로 최대 규모다. 아이폰의 아성을 위협할 삼성 신무기에 대한 관심은 끓어올랐다. 갤럭시S4 언팩 반응은 더 뜨거웠다. 세계 3000여명의 기자들과 관람객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애플 신제품 발표행사에 비해 규모가 두 배다. 그동안 애플만이 누려왔던 특권을 어느새 삼성도 만끽한다.
세계 1위 업체가 되면 시장 확대에 있어 국경은 더 이상 제약요소가 아니다. 유럽시장을 공략하려면 신제품을 유럽에서 발표하고,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면 미국에서 발표해야 한다는 사고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발상이다. 언팩 행사가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세계로 생중계되니 국경이 의미 있을 리 없다. 지금은 삼성과 애플의 대결 그 자체가 세계인의 관심사다. 행사가 영국, 미국, 스페인, 독일 어디에서 열리든 시선을 끄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다음 언팩 행사를 우리 안방에서 여는 건 어떨까. 세계인이 궁금해 하는 요술상자를 이젠 우리 안방에서 당당히 열어젖히자. 더 욕심을 부려 스마트폰 제조에 쓰인 우리나라 협력업체의 기술도 함께 소개하는 초대형 행사로 키우면 더 좋다. 동반성장 기념식 플래카드 내걸고, 협력업체를 불러다 홍보용 사진 찍는 것보다 그 효과는 수십·수백 배로 커질 것이다. ICT강국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강의 실력을 갖춘 기업이 연이어 나오는 마당에 그 자부심을 살려 세계 시선을 우리 안방으로 잡아끄는 그 용기 있는 도전을 이제 시도할 때도 됐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