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개편안 처리 지연으로 주요 정책 수립은 물론이고 예산 집행이 전면 중단되는 행정 마비사태가 현실화됐다.
11일 관련 업계와 관계기관에 따르면 방송·통신을 막론하고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행정 공백으로 인한 정책 불확실성이 장기화되자 사업자는 설비투자와 경영전략 등 주요 의사결정을 미뤘다. `정부 정책 리스크`가 `산업계 경영 리스크`로 이어진 셈이다. 행정 공백이 장기화되면 자칫 방송·통신 융합 등 정보통신기술(ICT) 전반에 심각한 타격이 우려됐다.
이동통신 정책은 당장의 행정 공백뿐만 아니라 향후 방향성을 가늠할 수 없어 문제가 더 심각하다.
당장 2분기 이통사 간 음성LTE(VoLTE) 연동이 예상됐지만 그 전제조건인 데이터 접속료 논의가 전무하다. 접속료 산정 없이 이통사 간 연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 첫 개발 서비스가 사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통사 고위 관계자는 “VoLTE는 우리나라의 앞선 LTE 서비스 제공을 정책 공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한다”고 개탄했다.
1.8㎓, 2.6㎓ 대역 주파수 할당 정책도 제자리걸음이다. 방통위는 미래부 출범 이후 통신 정책 1순위로 주파수 할당을 선정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했다. 방통위가 할당 계획을 발표하고, 공청회를 개최했지만 미래부 출범 지연으로 후속 작업이 `올 스톱`이다. 가입비 폐지 등 이통요금 관련 정책은 물론이고 망 중립성 정책도 일정기간 표류가 불가피하다.
이통사 관계자는 “미래부가 당장 내일 출범해도 조직 구성과 사업자 의견 수렴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상반기 주파수 할당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장관도 없고 조직도 없는 현재로서는 시기를 예상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정책은 전면 보류됐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간 SO 정책 이관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탓이다. SO·지상파 방송사 간 재전송 대가 산정을 비롯해 SO 권역 제한 규제 완화 등 후속 작업은 차일피일 미뤄진다.
이용자 민원도 해결이 요원하다. 유학을 준비하는 최모씨는 IPTV를 해지할 때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정부가 올해 해외 이주를 위약금 면제 사유에 추가하지 않았냐”고 따졌다. 하지만 방통위는 지난해 발표한 것과 달리 아직 해결을 못 봤다. 방통위 관계자는 “IPTV뿐만 아니라 일괄적으로 약관 개선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한 휴대폰 본인인증에 “인증번호 문자 발송이 지나치게 느려 주어진 대기시간 내 인증을 못하는 예가 잦다”는 민원이 쏟아졌지만 여야의 개인정보보호 업무를 둘러싼 이견 때문에 해결이 요원하다.
미래부와 분리가 불가피한 방통위는 속수무책이다. 익명을 요구한 방통위 한 관계자는 “원래 새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미래부로 업무가 이관되는데, 아직 여야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어 중요 정책 결정권자가 사실상 없는 상태”라며 “그렇다고 사의를 밝힌 위원장이 앞으로 영향을 미칠 주요 정책을 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황태호기자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