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봉와직염으로 발이 퉁퉁 부어 후송 온 한 병사가 의료기기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한 수술실에서 판자로 만들어진 간이침대에 누워 있다. 위관급 한 군의관이 병사 곁에 다가와 종이 한 장을 내밀더니 서명을 하라고 한다. 수술동의서다. 환자 본인 동의하에 수술을 했다는 증명서다.
군의관이 병사에게 제시한 수술은 발목을 자르는 것이다. 이미 복숭아뼈 근처로 독이 파고들어 온몸으로 번지면 죽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젊은 병사는 `죽으면 죽었지 발목을 자를 순 없다`는 생각에 수술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후 병사는 50일 동안 군병원에 입원해 마취한번 하지 않은 상태에서 뼛속에 들어간 독을 `사각 사각` 소리를 들어가며 긁어내는 치료를 받았다.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20년 전 강원도 전방부대의 한 이동외과병원에서 일어난 실화다. 바로 기자가 군 복무 중에 실제로 겪은 일이다. 기자는 군병원에서 퇴원 한 후 유격까지 받고, 만기 제대해 현재 두 다리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국방 의료기관이 2000년대 들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국군의무사령부는 2004년 국방의료정보체계(DEMIS) 확산과 기능개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0년 이후에는 국군의무사령부 산하 19개 군 병원 전체에 차세대 국방의료정보시스템을 갖췄다. 민간병원 수준의 의료정보 체계를 갖춘 셈이다. 무엇보다 군 병원간 의료정보 콘텐츠를 공유, 지방 군병원에서도 수준 높은 진료를 가능하게 했다. 병원 전자의무기록과 처방시스템 통합 체계도 구축, 군 장병의 건강도 관리한다. 그러나 아직은 한계가 있다. 강원도 등 전방이나 외진 곳 근무 장병이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는 힘들다. 군 이동외과병원 시설은 여전히 낙후돼 있다.
미군은 오래 전부터 첨단 의료기기와 의료진을 보유한 군의료지원센터를 두고 있다. 미국 내 근무 장병은 물론, 세계 곳곳에 파견나간 병사들의 진료도 원격으로 담당한다. 100년 역사를 갖고 있는 월터리드 육군병원은 미국 전 의료기관 중 재활의 상징적인 병원으로 꼽힌다.
평균적으로 민간에 비해 낙후된 군 의료수준을 높이기 위해 군의 원격진료는 민간과 다르게 논의해야 한다. 이미 군 의료수준을 높일 수 있는 IT는 충분히 갖춰져 있다. 장병의 건강은 곧 군의 전투력을 의미한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