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용 포토레지스터 공장을 한국에 짓는데, 알고 보니 레지스터를 담는 용기(병)까지도 수입해야 하더군요. 포장재부터 공장 가동에 필요한 것이 일절 없어 모든 것을 수입하려니 벌써부터 사업할 일이 막막합니다.”
지난해부터 인천 송도에 포토레지스터 공장을 짓고 있는 일본 TOK첨단재료 장준 한국지사장의 하소연이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제조업 강국으로 떠올랐다지만 후방산업 인프라는 여전히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소재 기업이 거대 전자·자동차 시장을 겨냥, 우리나라에 속속 생산 거점을 마련하고 있지만 공장 가동에 필요한 원자재 구입·물류 등 열악한 환경에 고초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가 소재-부품-완제품에 이르는 제조업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의도가 분명하다면 후방산업 인프라부터 서둘러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다.
전자재료 사업 본사를 아예 한국으로 옮긴 다우케미칼은 전자재료용 감광재·폴리머 등 원료를 미국에서 수입하다 현지 조달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물류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료를 국내에서 찾기 힘들어 그나마 가까운 일본에서 조달하고 있다. 지리적 이점은 있으나 수입에 의존하니 부담되기는 마찬가지다. 물류비를 다소 줄인 대신 다른 문제가 여전히 많았다. 폴리머·에폭시 같은 외부 환경에 민감한 소재는 냉동 창고를 이용해야 하지만 한국에는 냉동창고 인프라가 열악했다. 수소문 끝에 냉동창고를 찾긴 했지만 번번이 부딪히는 문제에 경영진들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지난 2003년 충북 오창에 디스플레이 소재 공장을 지은 일본 JSR는 원료를 일본에서 들여와 한국 고객사가 원하는 용도에 맞게 배합한다. JSR 역시 공장 가동을 위한 기본적인 물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다. 배향막 재료 등을 보관할 때 사용하는 비닐봉지까지 미국에서 수입해 사용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흔한 비닐봉지지만 외부 오염을 차단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 제품이나 사용할 수 없다. 그러던 중 최근 한 국내 중소기업이 이를 국산화하자 국산 제품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원료를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 진출해도 비즈니스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실리콘을 생산하는 다우코닝이 대표적인 사례다. 실리콘은 유리나 반도체 등 산업 전반에 필요한 원자재다. 활용도가 큰 실리콘 소재지만 국내에서는 새로운 수요처나 협력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 소재 산업 저변이 얇은 탓이다.
이 같은 문제들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업계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 중 하나가 소재 산업의 중소기업 육성이다. 박춘근 한국다우케미칼 사장은 “한국 완제품 산업이 세계적인 리더가 되면서 글로벌 소재 기업도 적극 협력하고 있는 데 첨단 소재의 원료를 공급할 중소기업군이 없다”면서 “이 3개 층의 기업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소재 기업이 필요한 물자는 국내 중소기업이 국산화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중소기업에는 새로운 시장 기회가 되고, 소재기업은 한국에 터를 잡을 수 있다. 또한 부품·완제품 등 국내 제조업과 소재 기업이 협력해 신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매개체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용성 한국다우코닝 사장은 “소재를 개발하는 데에도 분담해야할 역할이 있다”며 “글로벌 기업이 원료를 공급하는 경우 최종 수요기업이 원하는 기술 규격에 맞게 조립·재가공을 지원하는 중소기업도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