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팹리스 엠텍비젼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로 재무구조가 악화된 게 직접적인 이유지만 무엇보다 삼성전자·LG전자 휴대폰 사업에 의존했던 탓에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오면서 타격받은 영향이 크다. 국내 팹리스 업계가 처한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엠텍비젼(대표 이성민)은 지난달 30일 경영 정상화를 위해 수원지방법원에 회생절차개시를 신청했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오후 4시 43분부터 엠텍비젼에 대한 매매 거래를 정지했다.
이 회사는 지난 2004년 국내 팹리스 업계 최초로 1000억원대 매출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했다. 2007년에는 매출액 1680억원을 기록하며 최대 실적을 냈다. 하지만 이후 매출액이 점점 줄어 지난해에는 323억까지 떨어졌다. 삼성전자·LG전자에 카메라 이미지시그널프로세서(ISP)를 공급했지만 ISP 기능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에 통합되고, 최대 고객인 삼성전자가 AP를 직접 개발하면서 협력사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후 고난의 연속이다. 근거리무선통신(NFC), AP 등으로 사업군을 확장하고 블랙박스 같은 차량용 반도체도 개발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 2011년 SK차이나와 합작해 중국에 SK엠텍을 설립하며 AP를 개발했지만 실패했다. SK엠텍은 부품을 받아 조립해 스마트패드를 만들어 파는 유통사로 변했다. SK엠텍 관계자는 “엠텍비젼이 20% 가량 지분을 가지고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지만 칩 개발은 당분간 접은 상태라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과 합작사 설립으로 돌파구를 찾아보려던 시도도 수포로 돌아갔다.
자회사 클레어픽셀과 MTH도 차례로 매각해 설계 사업을 조정했다. 300명에 가까운 인력도 100여명으로 줄였다.
삼성전자·LG전자의 구매 정책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팹리스 업계의 상황을 엠텍비젼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엠텍비젼과 나란히 1000억 클럽에 가입했던 코아로직 역시 삼성전자 협력사에서 제외되면서 매출액이 300억원 이하로 급감했다. 컨슈머 제품으로 방향을 전환, 겨우 흑자로 돌아섰지만 회사 규모는 반토막이 났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LG 덕분에 팹리스가 성장한 게 맞지만 반도체 시장이 점점 양극화 되는 상황에서 고객사와 제품군을 다각화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