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 탓에 이동통신재판매(MVNO) 업체가 범법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휴대폰 본인인증, 위치정보 서비스 등 통신사업에 기본적으로 수반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까다로운 자격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별정통신 4호 등록으로 중소 사업자에 MVNO 사업을 허용하면서, 부가서비스를 위한 법 규정은 까다롭게 적용해 산업 활성화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30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모든 MVNO 사업자가 소액결제 등을 위한 본인인증 과정에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MVNO 사업자가 휴대폰 소액결제 서비스 등을 제공하려면 본인인증이 필요하다. 현재 MVNO 업체는 통신사(MNO) 시스템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본인인증을 한다.
하지만 개정된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본인인증을 제공하려면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받아야 한다. 또 자체 시스템을 갖추고 인증을 제공해야 한다.
현재까지 MVNO 사업자 중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된 곳은 한 곳도 없다. CJ헬로비전, 한국케이블텔레콤 등 대형 사업자 일부를 제외하면 자체 전산시스템도 갖추지 못했다. 중소 MVNO 업체 입장에서는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되기 위해 갖춰야할 조건인 자본금 80억원 등의 조건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개정 정보통신망법이 내달 17일까지 유예기간을 적용하지만, 이후에는 중소 MVNO 업체는 모두 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위치정보사업도 제한을 받는다. 현행 위치정보법은 위치정보를 수집하려면 위치정보사업자 허가를 받도록 한다. MVNO 사업자가 지도나 친구찾기 등의 서비스를 위한 위치정보를 수집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된다. 하지만 MVNO 업체 중 허가를 받은 곳은 온세텔레콤과 에넥스텔레콤 정도에 그친다. 이제라도 허가를 받아도 기존에 가입한 고객에게 동의를 받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MVNO 업계는 부칙 등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던 업체에게는 소급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만 넣어도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MVNO 업계 관계자는 “MVNO 사업을 하는 별정 4호 사업자 자격은 쉽게 주면서, 다른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자격은 엄격히 제한한다”면서 “사업을 하지 말거나, 위법임을 알면서 몰래 서비스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정책적으로 MVNO를 육성하겠다면 활성화를 막는 규제도 현실적으로 완화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MVNO 사업자의 안이한 대응도 문제로 지적된다.
방통위 관계자는 “자격을 갖춘 MVNO 사업자부터 서둘러 본인확인기관 지정을 신청하라고 독려했음에도 아직 신청하지 않았다”면서 “사업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하고, 정부도 개선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