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행위는 흔적을 남긴다.` 추리 소설이나 범죄 영화에 많이 나오는 문구다. 한쪽은 흔적을 없애려 애쓴다. 다른 한쪽은 어떻게 하든 흔적을 찾으려 한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흔적을 추적하고 확인하는 장면은 흥분과 스릴을 안겨 주는 요소다.
버림받은 사랑의 기억은 아픈 흔적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복싱 선수의 찢어진 눈가는 영광스런 흔적이다. 과거에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의 흔적이 도화선이 돼 원만했던 부부가 파경으로 치닫기도 한다. 흔적은 기억 속에 자리 잡기도 하고, 상처처럼 몸에 새겨지기도 한다. 주변 지인들과는 관계(네트워크)로 얽혀지기도 한다.
아날로그 시대 개인이나 집단의 흔적은 서류나 사진에 남았다. 미디어 영상시대에는 캠코더와 CCTV에, 디지털 시대에는 IP와 SNS를 통해 새겨지고 남는다.
SF소설 `눈먼 시계공`에는 눈을 통해 뇌에 남겨진 잔상으로 피살된 개인의 최후 흔적을 찾는 기술이 등장한다. 미래 첨단과학이 지배하는 시대에 뇌에 저장한 기록을 흔적으로 추적해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겨진 흔적은 그것이 다시 드러날 때 새로운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비 또는 논쟁 거리가 되기도 한다. 묻혀 있던 흔적, 시대 상황에서 언급하기 어려웠던 흔적은 더더욱 그렇다. 보통 사람에게 흔적은 개인의 추억이지만, 특별한 사람들의 흔적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좋든 싫든 역사로 남기도 한다.
정치 이슈인 헌법재판소장 인사 청문회 과정을 보며 개인 흔적의 무서운 결과를 새삼 실감한다. 서류상 사실로 확인된 흔적 외에도 과거 처신의 흔적이 주변 지인의 기억, 관계 속에 남아 그를 재평가하는 잣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의 흔적은 개인을 넘어 소속 집단과 넓게는 국민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실망보다 감동과 희망을 주는 고위 공직자의 흔적을 접하고 싶다.
부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