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20>김대중 정부 첫날

김대중 정부 첫날

새 출발은 새 희망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1998년 2월 25일 출범했다. 인동초(忍冬草) 김대중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

날씨는 2월답지 않게 영상 8도로 포근했다. 하늘도 맑았다. 김 대통령은 각계 인사 4만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을 갖고 임기 5년의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예포가 울려 퍼지고 15대 대통령을 상징하는 1500마리의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성악가 조수미씨가 `아 동방의 아침나라`라는 축가를 불렀다.

김 대통령은 취임 선서에 이어 `국난 극복과 재도약의 새 시대를 엽시다`라는 취임사에서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어 정보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닦아 나가겠다”면서 “초등학교부터 컴퓨터를 가르치고 대학입시에서도 컴퓨터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김 대통령은 “세계는 지금 무형의 지식과 정보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지식정보사회로 나가고 있다”며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하여 고부가 가치의 제품을 만들어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어 “지금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남북문제 등 모든 분야에서 좌절과 위기에 처해 있다”며 “저는 소외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고 한숨짓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김 대통령의 취임사는 22분간 계속했다. 김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취임사의 상당 부분을 정보화 의지를 피력하는데 할애했다.

김 대통령은 10시 45분 취임식이 끝난 후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과 김영삼 이임 대통령 환송에 이어 국회의사당 앞마당 국기게양대 뒤편에서 `화합의 나무`를 기념 식수했다. 이 자리에는 김수환 국회의장(현 김영삼 민주센터 이사장)과 고건 국무총리(대통령권한 대행 역임)를 비롯한 16개 시·도 지사가 참석했다.

이 소나무는 12년생 향토 수종으로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에서 개량했다.

`화합`과 `도약`을 위해 이북5도의 흙과 물, 그리고 백두대간을 근간으로 한 태백산, 소백산, 지리산, 한라산 등 전국 유명 산 흙과 한강과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주요 강과 호수, 댐에서 가져온 물을 합토(合土), 합수(合水)해 사용했다.

산림청은 `화합의 나무`로 소나무를 채택한 것은 “소나무가 어떤 시련도 의연하게 극복하는 선비기개의 상징이며 우리 민족과 애환을 같이 해 온 `민족수`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취임식에 앞서 이날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국민의 정부` 첫날 아침을 맞이했다. 이날 오전 5시 40분경 일어난 김 대통령은 아침 신문을 읽던 중 부인 이희호 여사의 축하인사를 받았다.

“당신 축하해요.”

김 대통령도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당신도 축하합니다.”

김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는 인생 반려자이자 정치 동지이며 친구 같은 사이였다.

김 대통령은 자택을 출발, 국립 현충원을 참배하고 오전 8시 55분 공무원 출근시간에 맞춰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청와대 도착했다. 청와대 본관 앞 옆에 청와대 직원들이 도열해 김 대통령 내외를 박수로 환영했다.

김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앞에 도착, 강봉균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정보통신부 장관, 재정경제부 장관, 16·17·18대 국회의원 역임, 현 건전재정포럼 대표)의 영접을 받고 여직원 2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김 대통령은 곧장 집무실로 가서 출입기자들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대통령의 첫 소감을 말씀해 달라.

-나라 일이 좀 더 순조로울 때 취임했더라면 국민과 같이 기쁨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고비에 취임해 걱정이 크다. 언론에서 경제를 살려 달라, 물가를 잡아 달라 등 국민의 바람을 들었는데 모두 절실한 문제다. 국민에게 희망과 안도감을 주면서 국정을 이끌고 갈 것인가 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앞으로 국민과 함께 노력하면서 물가안정, 외채 상환, 실업문제 해결, 수출증대 등 경제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쓰겠다.

김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김중권 비서실장(새천년민주당 대표 역임, 현 변호사)과 박지원 공보수석(청와대 비서실장 역임, 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이 배석한 가운데 김종필 국무총리와 한승헌 감사원장(현 변호사) 지명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재가하는 것으로 대통령의 첫 권한을 행사했다. 김 대통령은 심우영 총무처 장관이 가지고 온 서류에 한글로 `김대중`이라고 서명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본관 2층 접견실에서 김중권 비서실장과 안주섭 경호실장(국가보훈처장 역임) 및 수석 비서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임명장 수여식에는 수석비서관들의 부인이 처음으로 참석했다.

강봉균 당시 정책기획수석의 말.

“김 대통령께서 국난 극복에 지혜를 모아 달라는 당부를 하셨어요.”

15대 대통령 취임식행사는 인수위에서 소위원회를 구성해 준비했다. 위원장은 이종찬 인수위원장(국가정보원장 역임, 현 우당장학회 이사장)이 맡고 각 분과위 간사와 대변인, 행정실장 등 8명으로 구성했다. 소위는 새 정부의 명칭을 `국민의 정부`로 정했다. 갈등을 타파하고 국민이 화합해 제2의 경제도약을 이룩한다는 의미에서 취임식 주제는 `화합과 도약의 새 출발`로 결정했다.

대통령 취임사는 별도의 준비 위원회에서 구성했다. 위원장은 정대철 국민회의 부총재(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가 맡고 그동안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간접으로 조언을 해 온 학계 인사중심으로 1998년 1월 중순경 작업에 착수했다.

김 대통령은 위원회에 “취임사는 추상적이고 듣기 좋은 말보다는 구체적인 비전과 국민이 고통분담을 동의할 수 있는 내용으로 작성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서울 중구 장충동 타워호텔 2층에 별도 사무실을 얻어 취임사 내용을 가다듬었다. 취임사 초안은 최장집 고려대 교수(현 고려대 명예교수)와 한상진 서울대 교수(현 서울대 명예교수,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이사장)가 주도해 작성했다. 초안은 2월 중순경 김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한상진 명예 교수의 회고.

“초안을 만들기 위해 학계인사들과 수시로 모여 의견을 나눴어요. 취임사에서 정보화를 강조한 것은 김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였습니다. 당시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는 출구가 정보화라고 보신 것입니다. 초안을 작성해 전달했지만 최종 취임사는 김 대통령이 자신의 뜻을 담았기에 초안과는 내용에 차이가 있습니다. 소위원회 외에도 여러 곳에서 취임사를 준비했고 이를 김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철학과 의지를 담아 확정하신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청와대 홈페이지도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는 25일 0시를 기해 전면 개편됐다. 새롭게 단장한 홈페이지의 메뉴는 △김대중 대통령 △오늘의 청와대 소식 △청와대 돌아보기 △청와대 자료실 △자랑스러운 한국 △역대 대통령 △참여마당 △어린이 코너 등 8개로 구성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 경축 리셉션에 참석했다. 이어 6시 30분 청와대에서 외국귀빈 초청 만찬이 열렸다.

김 대통령의 첫 날은 쉼표 없는 강행군으로 막을 내렸다. 청와대 첫날 밤, 김 대통령은 절간 같은 관저에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온갖 상념이 그를 휘감고 놓아 주지 않았다.

김 대통령의 회고록 증언.

“청와대에 밤이 왔다. 나를 그토록 핍박했던 역대 집권자들이 머무른 곳, 그들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내는 뒤척이고 있었다. 방이 너무 넓어 놀라는 눈치였다. 그것을 불편해 하고 있었다. 70대의 우리 부부가 기거하기에는 너무 커서 썰렁한 느낌이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3년 후면 새로운 세기를 맞게 됩니다. 21세기의 개막은 단순히 한 세기가 바뀐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혁명의 시작입니다. 지구상에 인간이 탄생한 인간혁명으로부터 농업혁명, 도시혁명, 사상혁명, 산업혁명의 5대 혁명을 거쳐서 인류는 이제 새로운 혁명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는 지금 유형의 자원이 경제발전의 요소였던 산업사회로부터 무형의 지식과 정보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지식정보사회로 나가고 있습니다. 정보화 혁명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만들어 국민경제시대로부터 세계경제시대로의 전환을 이끌고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는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손쉽고 값싸게 정보를 얻고 이용할 수 있는 시대를 말합니다. 이건 민주사회에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도전에 전력을 다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품질 좋고 가장 값싼 상품을 만들어 외화를 많이 벌어들이는 기업인이 존경받는 그런 나라를 저는 만들겠습니다. 기술입국의 소신을 가지고 21세기 첨단 산업시대에 기술 강국으로 등장할 수 있는 정책을 과감히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벤처기업은 세계의 꽃입니다. 이를 적극 육성하여 고부가가치의 제품을 만들어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벤처기업은 일자리를 창출해서 실업문제를 해소시키는데도 크게 이바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은 21세기의 정보화 사회에 큰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우수한 민족입니다. 새 정부는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가 지식 정보 사회의 주역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컴퓨터를 가르치고 대학입시에서도 컴퓨터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어 정보 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닦아 나가겠습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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