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화질소(NO) 같은 기체도 인간 삶을 개선하는 새로운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혈관 질환의 진단·예방·치료에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약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NO는 심혈관계에 작용해 혈전을 막는다. 심장마비 예방에도 좋다. 신경계에도 작용해 혈액순환을 활발히 하게 한다. 발기부전 치료뿐만 아니라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돕는다. 이런 NO의 순기능을 밝혀낸 학자가 바로 심혈관 질환치료 기제 연구로 199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루이스 이그나로 미국 UCLA 교수다.
산화질소는 공해물질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마취제로도 쓰인다. 그러나 이그나로 교수는 “공해물질은 일산화탄소(NO)가 아닌 이산화질소(NO₂)”라며 “아주 많은 양을 흡입하면 해로울 수도 있지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그나로 교수는 NO 성분이 들어 있는 영양제를 11년 전부터 직접 복용하고 있다. 일흔을 넘긴 나이지만 지금도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다. 취미로 시작한 마라톤이지만 42.195㎞를 13번이나 완주했다.
그는 건국대 초빙 석학 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2008년 3월 건국대에 초빙돼 한설희·신찬영 의학전문대학원 교수팀과 함께 KU 글로벌 랩(KU Global Lab)을 운영한다. 뇌혈관 계통의 새로운 치료약을 연구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연구 욕심은 변함없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대학에서 젊은 학생과 일하고 함께 공부하면서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도 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과학적 발견을 하고 좋은 과학자가 되는지 이야기해주는 것이죠.”
이그나로 교수가 학생에게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알려고 하는 태도고 두 번째는 알고자 하는 것을 실제 연구로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모두 열정에서 비롯된 과학자의 기본 자질이다.
이그나로 교수는 “좋은 과학자가 되는 것은 지름길이 따로 없다”면서 “목적이 있다면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요즘 젊은이는 돈을 많이 버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라면 자연과학·기초과학에 종사하는 것은 큰 성과가 없을 것입니다.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확률이 높지 않다는 이야기죠. 좋은 연구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건국대 석학교수로 있으면서 그는 지난 5년 동안 여러 차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이기도 한 그는 `심장혈관 시스템에서 신호전달분자 NO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여러 번 강연했다. 2012년 4월에는 이틀간 개최된 `노벨 런치(Novel Lunch)`에서 건국대 학부생 및 고등학생 20여명과 점심을 함께하며 과학과 노벨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그나로 교수는 과학에 대한 관심, 이공계 기피 현상 등은 대학생이 되기 이전 초·중·고등학생 과정에서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한국을 방문하면서 대학과 기초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매우 영리하고 총명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엄청난 연구개발(R&D) 예산을 투입하면서 기초과학 투자를 열정적으로 진행한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과학 정책 중 빠져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대학 교육 이전 초·중·고등학생의 과학 관심을 이끌어내고 과학자의 길을 걷게 하는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그나로 교수는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이공계 기피현상은 기초과학이 아닌 응용, 산업과 관련된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춘 정책에도 책임이 있다고 여긴다. 그는 “매우 뛰어나고 똑똑한 고등학생이 기초과학 분야에 진입하려 하지 않는다”면서 “돈이 많을 벌려고 산업 쪽만 관심을 가진다”고 비판했다.
“젊은 학생은 좀 더 꿈을 가지고 과학을 접근해야 합니다. 당장 먹고사는 데 신경 쓴다면 좋은 연구결과가 나오기 힘들죠. 기초과학이나 의학연구 분야에 뛰어들어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는 것. 이런 노력과 열정을 잃지 않도록 동기부여 해주는 것도 정책의 방향이고 사회의 역할입니다.”
2011년 건국대발전기금본부(SKARF) 출범식에서 장학금을 기부한 바 있는 그는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과학도의 열정을 돕기 위한 시스템 구축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루이스 이그나로 교수는
1998년 루이스 이그나로 UCLA 교수는 프랑스 강연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가는 공항에 있었다.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 순간 항공사 직원이 그에게 다가왔다. 이그나로 교수에게 전화가 있다고 말한 승무원이 휴대폰을 넘겨줬다.
음성 메시지가 있었다. 이그나로 교수와 친하게 지냈던 UCLA 동료였다. 그는 메시지에서 이그나로 교수가 그해 노벨생리의학상자로 발표됐다고 이야기했다. 이그나로 교수는 동료가 장난을 친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한 시간 뒤 이탈리아에서 도착했을 때 100여명의 사진 기자가 셔터를 누르고 플래시를 터트리며 이그나로 교수를 맞았다. 그는 `아. 이 비행기에 이탈리아 대통령이 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탈리아 대통령은 찾을 수 없었다.
이그나로 교수는 그때서야 동료가 한 말이 농담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이탈리아 강연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갈 때까지 사흘 동안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이그라 아이디어 제시
1941년 5월 31일 미국에서 태어난 루이스 이그나로 교수는 1962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한 후 4년 동안 미네소타 대학에서 약리학을 공부했다. 미국 약리학자로 심장혈관 체계에 일산화질소(NO)가 관여 분자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1998년 퍼치고트, F 머래드와 공동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1980년 다이너마이트에 들어 있는 니트로글리세린이 어떻게 혈압을 낮춰주는지 원리를 발견했다. 심장 통증을 치료하는 몇 가지 물질로 쓰이는 니트로글리세린은 심혈관에서 NO로 변환돼 통증을 치료했다. 1986년에는 NO가 우리 몸 안에서도 생성된다는 발견을 했다. 이 발견을 계기로 의약 분야에서 NO 연구가 광범위하게 시작됐다. 이그나로 교수는 “이 두 가지 NO에 대한 연구, 특히 두 번째 발견을 노벨 위원회에서 높게 평가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구 성과는 심혈관 질환 치료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그나로 교수는 “1990년 NO가 성기능 조절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발기부전증과 관련 있는 신호 전달 물질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발기부전은 남성의 10~20%에 이르며 연령과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증상이다. 나이가 들수록 증상이 더 많이 나타난다. 치료 관련 신호전달 물질이 NO란 것을 파악한 후 직접 발기부전 치료제 연구에 나섰다. 그러나 이그나로 교수는 “대학이 제약회사 연구실과 달라 실제 테스트 등 임상실험은 못해봤다”며 아쉬워했다.
발기부전증이 있는 남성은 NO를 생성하는 효소가 부족하다. NO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치료의 주 원리다. 발기부전 치료 연구 기반을 다진 그의 성과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로 확인됐다.
이그나로 교수의 연구를 토대로 세계적 제약회사 파이저(pfizer)에서 치료제를 만들어 세계적 유명세를 타게 됐다.
학계에서는 비아그라를 탄생시킨 기초과학적 공로로 이그나로 교수를 `비아그라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그나로 교수는 비아그라에 대한 특허 등 관련 지식재산권은 전혀 확보하지 못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