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힐링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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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두는 `힐링(healing)`이다. 지난해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이어 올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모두 마음의 치유를 테마로 한 책이다. SBS `힐링 캠프`는 유력 대선주자가 앞다퉈 출연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오토캠핑, 섬여행, 템플스테이 등 이른바 `힐링 여행상품` 매출은 지난해보다 30%나 급증했다. 우리 삶이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다. 고통으로부터 치유 받고 싶다는 욕망과 문화상품이 결합하면서 힐링 소비문화까지 만들어냈다.

힐링을 갈구하는 이 시대 고통은 과연 무엇일까. 책이나 TV 등 미디어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고통 사례는 대부분 비슷하다. 실직, 진로, 학업, 업무, 스트레스, 인간관계 불화 등이다. 여기에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경기 불황이 무거운 그림자로 깔린다.

고통의 대부분은 미래와 연결됐다. 지금 고통스럽더라도 미래가 편안하다면 문제가 안 된다. 한마디로 `미래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 그래서 힐링 상품은 대개 미래 구원 방안을 제시한다. 긍정적 정신을 바탕으로 자기계발이나 자기관리를 해 미래를 준비하라는 식이다. 고통 원인의 상당수가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데 반해 개인적 치유만을 대안으로 제시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대선 후보들이 하나같이 `복지` `경제 민주화`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제 개인적 치유가 아닌 사회적 치유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대선은 이 점에서 호기다. 국민의 고통을 야기하는 사회 구조적 모순이 대대적으로 공론화되고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고통 극복이 현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 시대 고통의 본질이 대부분 미래 불안이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 경제의 우상이었던 일본과 유럽이 무너졌다. 노키아·소니 등 글로벌 기업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가 아무리 현재의 사회 모순을 완화하더라도 미래 비전을 밝히지 못하면 국민은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미래는 결국 경제와 결부된다. 한국 경제의 지속성장 여부다. 지금 대선후보들의 공약은 대체로 정보통신기술(ICT)과 과학기술 육성에 초점을 맞췄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모두 전담부처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5년간 미래 성장동력을 등한시하면서 야기한 불안을 반영했다. 문제는 이들 공약이 얼마나 구체적인지다. 두루뭉술한 방향성은 기득권의 저항도 불러온다. 최근 전담부처보다 사람이 문제라는 식의 기존 체제유지론도 고개를 든다. 사회 구조나 제도의 문제보다 공무원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고통의 근원이 진정 무엇인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제 21일밖에 남지 않았다. 누가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지가 승부를 가른다. 진정한 `힐링 대통령`이 되려면 적어도 과거 회귀적인 `고통 담론`과 분명히 선을 그을 때가 왔다.


장지영 통신방송산업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