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현상의 시발점은 지난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공공기관 인력 개혁을 위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구원을 대폭 줄였다. 연구원 정년도 함께 단축했다. 이를 목격한 우수 인재가 이때부터 이공계 분야를 기피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2002년 수능시험에서 자연계열 지원자수가 전체의 27%로 1995년의 43%에 비해 급감하고, 의과대학 경쟁률이 주요 이공계를 상회했다.
우리니라가 가진 교육과 연구제도 등 구조적 측면도 이공계 기피현상의 주요 원인이다. 창의적 과학기술인력 양성 측면에서 이론 중심의 주입〃암기식 교육은 학생들에게 수학〃과학은 어려운 과목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초·중등학생의 수학·과학 흥미가 저하됐다. 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 중학생의 과학 흥미도는 조사대상 국가 57개국 중 55위로 최하위권이다. 실생활 연계형 수학과학 체험기회와 이공계 진로교육 미흡으로 과학기술계 진출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적지 않다. 고등학생 10명 가운데 1명만이 이공계 진로정보 제공에 만족한다는 조사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우수한 과학기술인력이 이공계보다 의학과 약학 등 타 분야 진출을 선호하는 현상이 지속된다. 석·박사생과 연구자의 연구몰입 환경도 미흡해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는 대학도 실질적으로는 학부중심으로 운영된다. 출연연의 경우 비정규직 인원 비중 증가로 신분이 불안정하며 연금이나 정년 등에서 대학교수 등과 비교해 미흡하다. 이 밖에 여성과학자의 활용도는 아직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며 원로과학자의 활용도 제한적이다.
이공계 기피 해소를 위한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수립, 시행해왔다. 대표 정책이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에 의해 마련됐다. 교과부는 2004년 3월 제정된 `국가과학기술 경쟁력강화를 위한 이공계지원특별법`에 근거를 둔 `과학기술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국과위는 지난 5월 과학기술기본법에 근거한 `이공계 르네상스 5대 희망 전략(안)`을 마련했다.
정부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사회·경제적 현상으로 인식하고, 과학교육 내실화, 진학제도 개선, 병역특례의 확대, 대학교육 혁신, 고위직 및 개방직 공무원 이공계 우대, 이공계 복지향상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정부 노력에도 이공계 기피현상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정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교육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초등과 중학교에서는 창의교육이 일정부분 적용되나 고등학교의 경우 입시를 위한 암기식 교육이 여전하다. 현행 대학입시제도 하에서는 이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이원근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성적이 아닌 창의적 잠재력을 평가해 이것을 대학입시에 반영하는 입시제도의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대학에서도 기업의 요구를 무시한 경직된 교육이 계속돼 부진을 면치 못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 수가 늘면서 대학 교육과정이 질적으로 저하된 부분도 있다. 기업·출연연 연계를 통한 현장밀착형 교육 강화도 필요하다. 출연연의 교육 참여와 연구몰입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연구의 자율성과 예산집행의 독립성 등 연구몰입환경의 조성을 위해 출연연에 대한 선진화가 진행돼야 한다. 절반에 가까운 비정규직 연구원의 문제도 이공계의 직업불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진원지다.
이와 함께 인재의 수요와 공급은 미래과학 기술의 정밀한 예측에서 비롯되지만 아직 예측력이 부족해 조기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지 못하는 한계점도 있다. 따라서 미래 기술과 산업에 대한 국가적 예측력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이공계 기피 발생과 정책현황
자료:국회입법조사처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