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암리에 관행처럼 굳어졌던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계의 반도체설계자동화(EDA) 툴 라이선스 불법복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관이 공동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동안 정부와 업계, EDA 업체들마저 묵인해 왔던 현안이다. 최근 매트랩 등 일부 EDA 툴 업계를 중심으로 국내 업체 적발건수가 늘고 경기 악화로 EDA 업계의 수익성도 떨어지면서 이슈로 떠올랐다. 관련 기사 본면
지식경제부는 팹리스 업계에 만연한 EDA 툴 불법복제 문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지난 주 간담회를 갖고 공식 논의에 착수했다. EDA 툴은 시스템 반도체 설계를 위한 SW의 일종으로 시놉시스, 케이던스, 멘토 등 해외 업체가 선점했다.
영세한 국내 팹리스 업체들은 EDA 툴을 불법 복제해 사용해 왔다. 개당 적게는 1억~3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EDA 툴을 정품으로 구매할 여력이 없는 탓이다. 대형 팹리스도 일부 수량에 한해 정식 라이선스를 구매하지만 나머지를 불법복제로 돌리는 실정이다. 모 팹리스 업체 사장은 “중국 현지 대행 업자를 통하면 약 10만원에 미국 EDA 업체의 제품 라이선스를 받을 수 있다”며 “90% 이상의 팹리스 업체들이 라이선스 카피본(불법복제)을 쓰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EDA 툴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했지만 실효성이 미미했다. 한국전자통신진흥원(ETRI) IT SoC 센터는 몇 년 전부터 시놉시스 등과 협의, 30인 미만의 비상장 팹리스에 저렴한 사용료를 받고 EDA 툴 라이선스를 대여했다. 그러나 지원 조건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인데다 라이선스 개수는 늘 모자라는 실정이다. 심지어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연간 회원으로 등록한 뒤 실제로는 불법복제 SW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추후 생길지 모를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한 도구 정도로 활용된 셈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현행 EDA 툴 지원 제도의 자격 조건을 대폭 확대하고 국책 과제 참여업체에 한해 일부 사용료를 물리는 등의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피해 당사자인 EDA 업체들도 불법복제 사실을 알지만 한국 고객사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섣불리 나서지는 않는 상황이다. 영세한 국내 팹리스 업계를 상대로 피해배상 소송에 나서도 얻을 게 많지 않다는 계산이다. 업계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미국 EDA 업체들은 이미 자사 판매량 및 사용현황을 PC 클라이언트 집계 등을 통해 파악하고 있으며 한국의 불법 사용 현황도 인지했다”며 “본사 차원의 공식 대응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