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엔젤협회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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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가 아니라 대출이라는 느낌입니다. 우리나라 엔젤 투자자는 상환부터 생각합니다.” 창업가들로부터 흔히 듣는 이야기다.

창업 붐이 일면서 엔젤 투자자가 늘었지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으려는 일반 금융기관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투자받은 회사는 계약서가 너무 복합해 투자를 하지 않을 방침입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투자자가 기자를 만나서 들려준 말이다.

이 투자자는 한국에서 투자받은 회사의 계약서는 다양한 형태로 상환 규정이나 보호 장치를 많이 둬서 두 번째 투자자로 나서기가 부담스럽다고 설명했다.

10여년간 무너졌던 한국 창업 생태계가 다시 살아나는 조짐이다. 규모를 키우는 데 필수적인 게 엔젤 투자자다. 한 번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천사`가 많아지면 한국에도 혁신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엔젤 투자자가 회사를 발굴하고 도우면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금 지원은 물론이고 멘토링에 필요한 인맥을 소개하기도 한다.

어디든 거품이 끼게 마련이다.

엔젤 투자자를 빙자해 정보기술(IT) 기업의 특허나 경영권을 노리는 기업사냥꾼이 속속 보고된다. 엔젤 투자보다 창업 기업을 위해 조성된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엔젤로 행세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상반기 엔젤투자매칭펀드 심사 통과율이 절반을 갓 넘기는 수준이었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침체를 겪고 있는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면 어려운 엔젤 투자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투자자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우리나라에도 처음으로 엔젤협회가 출범한다.

창업 교육 논의가 많이 이뤄진 반면에 투자자 교육은 전무한 게 현실이다. 건전한 창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엔젤을 이해하는 투자자가 많아야 한다. 엔젤 투자가 무엇인지 제대로 된 철학이나 고민 없이 나서는 사람들 때문이다. 투자에서 문제가 생기면 창업 생태계도 망가질 수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 꺼진 후 창업 환경은 그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엔젤협회가 좋은 엔젤 투자자를 양성하고 블랙엔젤은 걸러주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오은지 벤처과학부 onz@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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