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자산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선진국들의 견제는 크게 늘어났다. 미국과 유럽공동체(EC)는 TV, 라디오, 오디오, 전자오븐, 냉장고 등 다양한 생활가전을 비롯해 급성장한 한국 반도체에 무더기 반덤핑제소를 가하며 시장 확대에 제동을 걸었다.
한국산 TV는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이 컬러와 흑백TV에 반덤핑제소와 긴급수입제한조치 등을 실시하며 견제했다.
선진국들의 한국산 기술 제품 견제는 199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화됐다. 미국, 일본, EC 간 무역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입규제 조치를 강화함에 따라 우리나라 10대 주력 수출품목이 위협을 받았다.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전기·전자, 섬유, 철강, 조선, 신발, 자동차, 기계, 석유화학, 플라스틱제품, 컨테이너 수출은 전체 수출증가 예상률인 9~10%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8%대 성장에 그치며 증가율이 둔화됐다.
당시 유럽연합(EU)은 컬러TV, 대형 콘덴서 플로피디스크(3.5인치), 위성수신기 등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에 착수했다. 1992년 7월에는 한국산 합성폴리에스테르(PET) 섬유에 반덤핑 관세 예비를 부과했으며 삼양사 9%, 선경 1.6%의 잠정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반덤핑 조사가 시작되면서 합성폴리에스테르 섬유의 대EU 수출은 급격히 위축됐다. 연간 2324만달러 규모였던 이 시장은 반덤핑 조사 개시 후 1991년 710만달러로 줄었다. 이미 소형 컬러TV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대형 컬러TV 조사도 착수했다.
결국 1995년 유럽연합은 한국산 중대형 컬러TV에 13.4~17.9%의 확정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산 전자레인지도 잠정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고 모든 컬러TV와 합성폴리에스테르(PET) 비디오 필름의 반덤핑 관세도 재심을 했다.
이에 대우 17.9%, 삼성 13.7%, LG 13.4%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았다. 한국산 제품뿐만 아니라 중국 제품은 소형을 포함한 모든 컬러TV에 25.6%, 말레이시아산은 2.3~19.6%, 태국산은 삼성 현지법인 12.1% 등 최고 29.8%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싱가포르산은 최고 23.6%를 받았다.
생활가전과 화학 부문뿐만 아니라 한국 반도체 산업도 같은 시기에 극심한 통상 마찰을 겪었다. 특히 미국은 일본에 이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을 맹렬히 견제했다.
미국의 반도체 산업 견제는 최대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앞장섰다. 마이크론은 1985년 미국 상무부에 일본 NEC, 히타치, 미쓰비시, 오키를 반덤핑 혐의로 제소했다.
마이크론이 시작한 일본 반도체 기업 견제는 미국 내 동종 기업들이 동참하며 확대됐다. AMD, 모스텍, 모토로라, 내셔널세미컨덕터,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인텔은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마이크론의 제소 내용을 지원하면서 미·일 반도체 대전을 확산시켰다. 결국 미국 상무부는 이듬해인 1986년 이들 기업에 21.7%에서 최고 188%에 달하는 덤핑 마진율을 부과했다.
당시 미국의 반덤핑 판정은 일본산 반도체 가격 인상 요인이 됐으며 일본 경쟁사들의 생산설비 투자와 연구개발 기회를 막는 요소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일 반도체 대전의 다음 타깃은 한국이었다. 미국과 일본이 치열하게 분쟁할 때 한국 반도체 시장은 이병철 삼성 회장이 1983년 D램 사업 진출을 공식화한 이른바 `도쿄 선언`을 시작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미국은 1992년 본격적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 견제에 나섰다. 미국 상무부는 마이크론이 제소한 한국 업체들의 1메가급 이상 D램 반도체 반덤핑 혐의에 대해 1992년 5월 조사를 시작했다.
당시 마이크론은 현대전자 283%, 금성일렉트론 132~273%, 삼성전자 13~129%의 높은 반덤핑 관세 부과를 요청했다. 결국 미국 상무부는 1993년 5월 현대전자와 금성일렉트론에 각각 7.19%와 4.97%의 반덤핑 관세를 최종 부과했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 3사는 일본과 달리 반덤핑 혐의 결정에 불복하고 연례 재심을 요청했다.
총 세 차례에 걸친 연례 재심에서 미 상무부는 이들 업체의 덤핑 혐의를 발견하지 못하고 최종 판정보다 낮은 0.5% 미만의 마진을 판결했다. 그러나 4차 연례재심에서 현대전자와 금성일렉트론에 각각 3.95%, 9.28%의 높은 덤핑 마진율을 적용하며 반덤핑 조치를 철회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 정부는 1997년 8월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을 제소하고 반도체 3사에 대한 반덤핑 철회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반덤핑 규정 중 일부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조사 철회 시 앞으로 덤핑 가능성이 없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미국 측에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 규정을 근거로 내세워 현대전자와 금성일렉트론에 대한 반덤핑 조치를 철회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처음으로 외국을 상대로 제기한 이 무역 분쟁에서 1998년 12월 최종 승소했다. 이 분쟁에서 우리나라는 미국의 관련 조항이 개정돼야 한다는 WTO 판정을 이끌어냈다.
반덤핑 규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세계적으로 관세 장벽 완화·철폐 바람이 불면서 관세율이 인하된 것과 반비례하며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반덤핑 규제를 하지 않던 개도국들이 규제를 시작하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실제로 1990년대 들어 반덤핑 규제는 1980년대 대비 전 세계적으로 약 60% 증가했다. 반덤핑 제도 적용 국가는 1993년 12개국이었으나 2000년 말에는 62개국이 반덤핑 규제를 법제화했고 28개국이 적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2001년 전 세계 반덤핑 조사개시 건수는 366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글로벌 경제 위기가 닥친 2008년에 213건을 기록해 전년 대비 29% 증가했다. 이후 2010년에는 170건으로 감소했다.
반덤핑 규제 발동 건수는 2003년 이후 감소해왔으나 2008년 139건으로 전년 대비 29% 증가했고 2010년에는 121건으로 감소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1년 12월 말 기준으로 해외 21개국에서 111건의 한국 상품 수입을 규제하고 있다. 이는 2010년 20개국 119건보다 감소한 수치다. 신규 제소는 18건으로 전년과 동일하나 20건이 규제 종료돼 전년(13건)보다 늘었다.
과거 한국 상품 규제가 미국과 유럽 선진국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신흥 개도국이 주도하고 있다. 자국 산업 육성·보호를 위해 수입규제 조치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상품 규제 111건 중 미국, EU 등 선진국에 의한 규제는 19건에 그쳤다. 수출이 크게 늘고 있는 인도, 중국 등 신흥 개도국은 92건에 이르러 통상 사절단 파견, 경제협력 강화 등 한층 적극적인 통상마찰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가별로는 인도가 23건으로 대한국 규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뒤를 이어 중국(17건), 미국(12건), 터키(12건) 등으로 나타났다.
품목별 대한국 수입규제는 석유화학 42건(37.8%), 철강금속 32건(28.8%), 섬유 18건, 전기전자 6건 등으로 조사됐다.
2012년 현재 반덤핑 규제와 상계관세 부과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경쟁국의 산업 성장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 월풀이 2011년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일렉트로닉스를 대상으로 프렌치도어 냉장고와 드럼 세탁기에 반덤핑 혐의를 제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업체들은 한국 제품이 미국 가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면서 월풀이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아지자 경쟁사들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반덤핑 혐의를 제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이 건은 2012년 3월 최종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한편 2012년 2월 28일에는 EU가 약 12년간 지속해온 한국산 PET 칩에 대한 반덤핑 조치를 종료했다. EU는 2000년 11월부터 국산 PET 칩을 규제해왔으나 한국 정부와 업계가 긴밀히 공조해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대응한 결과 관련 조치를 최종 해제했다.
[표] EU의 대한 수입규제 현황 (자료: 2004년 6월 세계화 WTO FTA 포커스, 이재기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