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70] 첫 과학기술부총리 탄생 <2004년 10월>

2004년 10월 19일. 우리나라 과학기술 행정체계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과학기술 부총리로 임명된 날이다. 본격적인 기술 중심 국가체제가 출범했다. 전날인 18일 오후 고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임명장을 받은 오 부총리는 “과학기술부총리 체제는 우리 경제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도약하는 전환점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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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오명 과기부총리에게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오 부총리는 과학기술정책과 관련 산업·인력·지역혁신 등 미시경제 전반을 총괄 조정하게 됐다. 특히 2004년 기준 국가 전체 예산의 약 4.8%인 6조원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심의·조정하는 한편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 등 19개 부·처·청별로 추진해온 과학기술정책의 방향을 총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과기부총리 탄생과 함께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출범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사무국으로서 국가 R&D사업의 중장기 투자계획과 기술혁신평가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과기혁신본부는 과기부와 다른 부처 공무원·민간전문가 등 106명으로 구성됐다.

◇과학기술 행정체계로 격상=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체제는 과학기술정책을 비롯한 관련 산업·인력·지역혁신 등 국가 미시경제 전반에 대한 총괄적이고 효율적 조정 체제의 가동을 의미했다. 19개 부·처·청에서 추진해온 R&D사업을 국가 전략 목표에 부합하도록 재설계하고 연구 개발 결과가 상용화돼 국부창출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부총리 체제의 사명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노동과 자본 투입에 의해 양적 성장을 추구하던 체제에서 과학기술이 국가 경제를 선도하는 기술혁신체제로 전환됐다. 실제로 과기부는 부총리 부처 승격, 과학기술혁신본부 출범 등 기능개편 작업이 끝나면서 △미시경제 전 주기적 관리 △기초연구 활성화 △정부 출연연구소 자율성 보장 △과학기술인 사기진작 등을 핵심 과제로 삼아 추진했다. 또 미래 국가 잠재력 향상을 위해 20.4%인 정부연구비 대비 기초연구 투자비중을 2007년까지 25%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향해=부총리 취임 후 과기부는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을 최대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스스로가 우리 기술의 상업화와 수출을 위해 세일즈하는 관료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기업이 가진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기업으로 하여금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과기부를 천명했다.

오 부총리는 당장 자기 부상열차에 대한 건설교통부의 표준화와 상용화 노력을 요청하기로 했다. 특히 해외에서 우리의 자기 부상열차를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해온 데 이어 대전광역시가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이라며 하루빨리 테스트를 완료하고 적극적인 세일즈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해수담수화 원자로(스마트) 수출을 성사시켜 중동 전역으로 시장을 확산될 수 있도록 정부(과기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방침도 밝혔다.

◇국가 R&D사업 종합 조정체제 구축=부총리급 과기부는 국가재정운용계획상의 투자 우선순위에 따라 국가 과학기술혁신정책과 예산배분을 연계해 R&D사업의 효율성을 따지게 됐다.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공동 R&D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부처공동기획단과 평가단도 구성·운영했다.

이를 위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심의·조정 기능을 강화하고 과학기술 관계 장관회의가 구성됐다. 또 과기부 산하 차관급 조직인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연구개발 조정·과학기술정책·기술혁신평가 등의 실무를 담당했다.

국가 연구개발 결과가 상용화돼 국부창출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기술개발→상용화 개발→국내 상용화→수출전략 산업화`에 걸친 전 주기적인 지원방안을 모색했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이를 위해 △대형 국책사업 수요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기술성과 경제성 분석을 통한 타당성을 검증했다. 사업과 추진단계별로 상용화 추진기획단의 역할을 조정해 소요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배분하는 방안을 수립하는데 힘을 쏟았다. 34%대인 출연연의 총연구사업비 중 기본 사업비 비중을 2008년까지 5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정부 비중을 축소하고 연구회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 조직과 인력 운영상의 유동성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기관별 간접비 책정, 연구원 평가결과에 따른 참여율 초과계상 등 성과에 입각한 인센티브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과학기술인공제회, 퇴직연금사업 등을 통해 과학기술자의 노후불안을 해소하기로 했다. 출연연 인력구조의 합리화를 위해 비정규직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보수 수준도 높이기로 했다.

미래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정부연구비 대비 기초연구 투자 비중을 올해 20.4%, 내년 21.7%, 2007년 25%로 확대한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가시적 성과도 나와=참여정부가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국가미래를 도약시키겠다는 취지에서 선택한 과기 부총리제는 출범 3년을 거치면서 서서히 가시적 성과가 나타냈다. 각 부처로 나뉘어 있던 과학기술 관련 정책을 하나로 모아 기획·조정·평가·예산 배분을 시도, 과기 부총리가 국가기술책임자(CTO) 역할을 함으로써 국가과학기술을 체계화했다. 이로써 R&D 투자확대와 효율성을 제고시켰다는 점은 높게 평가된다. 과학기술 부총리 체제 출범과 그 위상이 강화되는 과정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사무국 역할을 담당한 과학기술혁신본부는 큰 몫을 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과학기술부가 정부 조직개편안에 따라 과학 분야와 기술 분야가 분리된 채 교육인적자원부와 산업자원부로 흡수한다. 4년 전 과학기술 부총리체제 출범과 함께 만들어져 정부 부처 간 연구개발 조정업무를 담당해온 과학기술혁신본부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대통령)로 이관되거나 기초분야와 함께 교육부로 합쳐진 뒤 기능이 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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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9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부총리 자격으로 처음 국무회의에 참석한 오명 과기부총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부 변천사

과학기술 분야는 새 정부 출범 때마다 행정체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변화의 기조는 과학기술 분야의 중요성이 점차 확대된다는 점이다.

과학기술 행정체계의 시작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제2차 기술진흥5개년계획(1967∼1971)을 추진하기 위해 과학기술행정 전담부서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과학기술처가 신설된다.

초대 김기형 장관 취임과 동시에 2실 2국 6과로 출발한 과학기술처는 30년간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를 이끄는 견인차 노릇을 해 온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1998년 2월 28일 오늘날과 같은 과학기술부로 승격, 개편된다.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행정체계를 더욱 강화한다는 취지였다. 부로 승격된 과학기술부에는 19대 강창희 장관이 취임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진입하기 위해 과학기술혁신 주도형 경제로의 전환을 꾀하며 과기부를 국가기술혁신체제 구축의 중심부처로 개편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과학기술정책을 기획·조정할 과학기술혁신본부를 과기부 내에 두기로 결정, 과학기술혁신본부준비기획단이 신설된다.

2004년 10월 오명 과기부 장관이 대통령으로부터 부총리 임명장을 받으면서 경제 부총리와 함께 우리 경제를 책임질 양대 사령탑으로 과기부의 수장이자 부총리인 과기 부총리가 처음 탄생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는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없애고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했다. 이는 앞선 참여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가 있다. 참여정부에서는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을 위해 과학기술 부총리와 과기혁신본부를 뒀다. 특히 과학기술부가 부총리 부서로 승격된 것은 파격적이었다. 국가 R&D 예산의 1차 편성권도 과기부가 갖고 있었다.

반면에 현 정부에서는 R&D 예산 확보를 둘러싸고 지경부와 교과부 등 부처 간 갈등이 심화되고 사업 중복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교육과 과학기술 간 불균형도 심각하다. 교과부 내 과학기술 관련 조직과 인력도 대폭 축소됐다는 평가다. 다만 과기 정책 컨트롤타워를 부활시키겠다는 취지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를 출범시켰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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