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배아 줄기세포 복제 성공`
2004년 2월 미국 `사이언스`지는 인터넷 속보로 황우석 박사(전 서울대 교수) 연구팀이 인간의 난자를 이용해 체세포를 복제해 배아줄기 세포를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모든 조직을 재생할 수 있는 세포` 학계에서는 뇌질환, 당뇨병, 심장병 등 난치성 세포 치료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환호했다. 인간 복제라는 윤리적 문제도 함께 뒤따르면서 황우석 교수의 연구 성과는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5년 1월 정부에서 황 박사팀 줄기세포 연구를 공식 승인하면서 황 박사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다. 4월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 이언 월머트 박사가 루게릭병 치료기술 공동 개발을 제안하면서 매스컴이 집중됐다. 연이어 5월에 황 박사는 환자에서 추출한 배아 줄기세포 연구결과를 다시 한 번 `사이언스`지에서 발표했다.
각 국의 연구진이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당시 서울대에서 의생명공학연구동 기공식에서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이명박 대통령(당시 서울시장) 등이 참석해 `제2, 제3의 황우석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정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할 만큼 황 박사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생명공학 열풍이 뜨거웠다. 황 박사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과학의 대표 아이콘이 됐다.
황우석 사태의 발단은 MBC PD 수첩 게시판에 황 박사의 맞춤형 줄기세포 추출 연구논문이 허위일 것이라는 제보에서 시작됐다. 2004년 연구에서도 난자 제공을 위해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고 연구원의 난자를 사용하는 등 난자 사용 동의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2005년 11월 PD 수첩의 끈질긴 추적 보도 끝에 황 박사팀의 연구에 참여해온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은 “줄기세포 연구용 난자를 기증한 여성들에게 보상금을 줬다”고 발표했다.
공동연구자였던 미 피츠버그대의 제럴드 섀튼 교수도 연구논문 조작 가능성을 거론하며 황 박사팀과 결별을 선언했다. 황 박사는 대국민 사과를 통해 “연구원의 난자 이용을 시인한다”고 밝혔다. 또 2005년 논문에서 줄기세포가 생체 내 분화능력을 갖춘 완전한 줄기세포라고 했던 것을 수정해 사이언스지에 정정 보고했다. 섀튼 교수는 황 교수의 논문에서 자신의 이름은 빼달라고 사이언스에 요청할 지경에 이르렀다.
12월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줄기 세포는 없었다`고 잠정 결론을 냈다. 황 박사팀의 줄기세포 DNA와 핵을 제공한 환자 체세포의 DNA가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5년 논문의 줄기세포도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아니다`고 판명했다.
2006년 1월 황 박사는 논문 조작, 난자 매매 등에 대한 사실을 사과했다. 하지만 언론 보도와 조사과정에서 자신이 연구한 줄기세포가 `바꿔치기` 당했다는 억울함을 표시했다. 며칠 뒤 사이언스는 황 박사의 2004년, 2005년 논문을 공식 철회했다.
◇`사기, 연구비 횡령, 불법 난자 매매`=황우석 사태가 전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되자 검찰은 2005년 말 내사에 착수했다. 2006년 5월 검찰은 황 박사와 이병천 서울대 교수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사이언스 논문 발표 후 맞춤형 줄기세포의 상용화를 과장해 농협과 SK에서 20억원의 연구비를 받고 정부 지원 연구비를 빼돌린 혐의다. 난자 불법 매매 혐의도 받았다. 3년 후 2009년 8월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결심공판에서 황 박사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올바르지 못한 연구태도와 과욕으로 우리나라 과학계와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국민을 실망시킨 죄가 크다는 것이다. 당시 황 박사는 “기회가 있다면 과학자의 본분을 바로 세워 남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최후 진술을 했다.
이후 10월 선고 공판에서 황 박사는 줄기세포 연구 논문 조작 혐의, 정부 지원금 횡령과 난자 불법 매매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2년, 집행 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황우석 연구팀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처음부터 없었고 수정란 줄기세포를 이용해 맞춤형 줄기세포인 것처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과학적 연구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법적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인간 난자를 이용한데다 사기 횡령액이 8억3000만원에 이르러 죄질이 중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 성과를 과장해 민간 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아낸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취재 윤리 문제=황우석 사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계기의 중심에는 언론이 있었다. 줄기세포 존재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논문 조작 근거를 찾기 위해 강압적인 취재가 있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놀랐다. 서울대 병원에서 세계줄기세포 허브를 개설해 인간 줄기세포 연구 강화를 천명할 2005년 10월, MBC PD수첩 팀은 미국 피츠버그대에 있는 황 박사 연구팀의 김선종 연구원으로부터 난자 문제와 논문 조작 가능성 여부를 듣게 된다.
MBC PD수첩 팀의 추적 수사는 이후에도 계속 진행돼 난자 불법 매매와 줄기세포 존재 여부를 밝히는 데 노력했다. 황 박사와도 끈을 놓지 않아 결국 2005년 논문 의혹을 함께 검증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PD수첩은 황 박사의 줄기 세포가 논문의 체세포 DNA와 일치하지 않는 것과 난자 매매, 연구원 난자 사용 사실 확인 등을 추가적으로 보도했다. 사태가 커지자 황 박사는 대국민 사과를 하게 된다.
사실 관계가 일부 밝혀졌지만 PD수첩 보도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넷 커뮤니티 `아이러브 황우석` 카페 등 네티즌을 중심으로 PD수첩 보도가 편파적이고 취재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황 박사 지지자와 네티즌은 PD수첩 광고 내리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MBC 사옥에서 촛불 집회를 벌이는 등 MBC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2005년 1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홈페이지 기고문에서 `황우석 박사가 잘못했다고 달려들며 강압적 취재를 한 것은 잘못`이라고 발표하면서 PD수첩의 취재 윤리 문제가 급 부상한다. PD수첩의 모든 광고가 중단되는 등 MBC 보도 윤리 문제에 비난이 거세지는 가운데 2005년 12월 YTN은 PD수첩팀의 취재 과정에 강압적 태도가 있었다는 연구원 인터뷰를 방영하게 되고 MBC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다.
그 뒤에도 여러 언론사에서 황우석 사태에 대한 보도가 많았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MBC의 언론 보도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논문조작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황 교수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많은 언론사가 태도를 바꿨다. 당시 여론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태도가 돌변하는 몇몇 언론사를 비판했다. `언론이 과학을 검증한다`는 비난이 쏟아져 나올 만큼 언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국민 스스로가 생각을 해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황우석 영웅 만들기와 BT 거품
황우석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은 영웅 만들기의 위험성과 여론 동조의 사회적 피해 등 다양하다. 황 박사가 줄기세포 논문을 발표할 당시 우리나라는 바이오산업의 중심지임을 자처하고 BT 육성에 나섰다. 당시 황 박사는 과학기술계 스타였고 사회의 아이콘이었다. 논문 조작 가능성이 제기되기 전까지 여론은 황 박사를 바이오계 우상으로 떠받들었다. 아직도 황우석 사태에 음모론을 제기하며 황 박사를 지지하는 세력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을 정도다.
황우석이란 상징적 인물을 가진 바이오산업은 2000년대 닷컴 열풍과 함께 급성장을 이루게 됐다. 시장에서는 `줄기세포` `바이오`란 단어는 만능으로 통했다. 황 박사는 우리나라 바이오 산업에 대한 전례 없던 관심을 모았지만 동시에 거품을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결국 황우석 사태 이후 거품은 사그라지고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은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일부에서는 2000년대 후반 바이오산업이 재조명받게 되는 계기를 황 박사에서 찾기도 한다. 당시 바이오 버블이 잠재적인 연구개발(R&D) 시장을 형성했고 성과가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산업 특성상 오늘날 바이오산업이 고성장하게 된 밑거름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표] 황우석 사태 일지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