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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3월 29일 열린 창사 현판식. 초대 유영린사장(왼쪽)과 한국통신 이우재 사장이 참석했다.

SK텔레콤은 1984년 3월 29일 차량전화 서비스 업무의 효율적 관리와 이용자 편익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위탁회사인 한국이동통신서비스㈜로 출범했다. 납입자본금 2억5000만원, 직원 수 32명으로 구의동 광장전화국 한 편에 셋방살이로 현판을 내건 초라한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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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량전화점검반.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차량전화 단말기를 점검하는 이동정비반 (1986. 4)

SK텔레콤은 창사 첫 해 차량전화 서비스를 시작해 그 해 말 가입자 2658명, 매출액 3억9000만원을 기록했다. 말그대로 소규모 통신서비스 위탁관리회사였다.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차량전화와 무선호출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이동통신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당시 카폰을 생산하는 곳은 금성전기 등 4곳이었다. 대개 국산화율이 20%를 맴돌아 거의 수입완제품 수준이었으며 차량전화 단말기와 가입비를 합치면 400만원을 훌쩍 넘겨 `포니2` 자동차(400만원대)와 맞먹었다. 월 기본료 2만7000원, 8초당 20원, 단말기 유지보수료 월 1만원 등이 사용료로 부과됐다.

차량전화는 비록 상용화의 길에는 들었지만, 부유층 외에는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를 개시하자마자 신청자가 쇄도했다. 한 달 사이에 가입 신청을 한 사람이 2000명에 육박했다. 1년에 가입할 수 있는 전체 회선이 3000회선에 불과했기 때문에 몇 년치 회선을 서둘러 공급해야 할 정도였다. 이처럼 당초 계획을 수정해야 할 만큼 차량전화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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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월 국내 처음으로 이동전화서비스가 시작됐다. 최초 단말기인 모토로라 '다이나텍(Dynatac) 700'

◇휴대형 이동전화서비스 개시=SK텔레콤은 1988년 4월에는 공중전기사업자로 지정돼 한국이동통신으로 거듭나면서 독립사업자로 새 출발했다. 공중전기사업자 지정은 우리나라가 이동통신의 대중화 시대로 들어섬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국이동통신은 독립사업자로서 빠르게 기틀을 잡아 1988년 서울올림픽을 맞아 국내 최초의 휴대형 이동전화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휴대전화의 대중화를 앞당겼다.

1990년을 전후해 통화품질 면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한국이동통신은 집중운용보전시스템(CNSS) 개발 및 운용, 세계 최초 무선호출 전용 교환기 TDX-PS의 개발, 이동전화 교환기 간의 상호접속 기능이 있는 IS-41A의 세계 최초 운용, 관문교환기 개통 등 장비 국산화와 운용기술 자립에도 굵은 획을 그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 1991년 12월에는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를 돌파하면서 이동통신 대중화 시대를 활짝 열었다.

1989년 8월에는 대외적인 통신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재투자기관 최초로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1990년대로 진입하면서 한국이동통신은 경영혁신을 가속화하며 통신시장의 개방 및 이동전화와 무선호출 서비스의 제2 이동통신사업자 등장에 따른 치열한 경쟁에도 적극 임했다.

국내 통신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민영화 방침에 따라 한국이동통신은 1994년 1월 공개입찰을 거쳐 SK그룹에 인수, 민영화됐다. 민영기업으로 새 출발을 계기로 SK텔레콤은 급격한 성장과 함께 더 큰 도약을 추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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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4월 1일 `CDMA 서비스 개시 행사`에서 이수성 국무총리가 CDMA 이동전화 시험통화를 하고 있다.

◇세계 최초 CDMA 이동전화 상용화=SK텔레콤은 1996년 1월, 세계 최초로 CDMA 디지털 이동전화를 상용화하면서 세계 이동통신사에 굵은 획을 그었다. CDMA방식은 이후 세계 표준으로 확산되면서 CDMA 기술종주국으로서 SK텔레콤의 위상은 더욱 강화됐다.

1992년 12월 3일 CDMA 기술을 이동통신 단일 표준화 기술로 발표한 체신부는 CDMA 기술 개발을 가속화했다. 6개월에 걸친 CDMA 시스템 개발이 속도를 내지 못하자 다급해진 체신부는 1993년 6월 15일 제2 이동통신사업자 선정 허가 항목으로 CDMA 방식을 채택하겠다는 새로운 방침을 발표했다. 이어 9월 16일 한국이동통신 내에 이동통신 기술개발 사업관리단을 출범시키면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CDMA 시스템 개발에 경쟁을 유도했다.

사업관리단은 SK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이동통신 시스템과 단말기, 기지국 상태 등을 점검할 시험 장비를 갖추고 1994년 8월 개발업체를 대상으로 차례로 108가지 항목에 관한 예비시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예비시험을 통과해 한국이동통신 서울 장안동 연구실에서 상용시험기를 가동했다. 예비시험을 통과한 장비로 시험을 거듭해 한국이동통신은 1994년 11월 18일 마침내 세계 최초로 CDMA 방식 시스템 운용 시험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상용화를 목표로 CDMA 시스템의 하드웨어 개량 및 보완, 소프트웨어의 향상과 디버깅을 위해 사업관리단 연구원들은 휴일도 반납해야 하는 희생을 치렀다. 천신만고 끝에 시스템은 완성됐지만 기존의 아날로그 망에 연동시키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따랐다. 아날로그 주파수 대역에서 CDMA 시스템의 운용 주파수를 뽑아낸다는 것은 엄청난 위험 부담을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1995년 1월 본격적인 상용시험에 들어갔지만 상용화 성공을 위해서는 교환기, 단말기 개발, 기지국 최적화, 시스템의 완벽한 구축 등 수많은 과제가 아직 남아 있었다. 서울의 기지국 200여개를 최적화하는 작업은 1996년 1월 상용화를 목표로 촌각을 다투는 작업이었다.

1995년 3월 서정욱 사업관리단장이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CDMA 상용화에 더욱 속도가 붙어 가던 즈음에 SK텔레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당시 세계 이동통신업계는 PCS 기술 표준을 놓고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고, 우리나라 역시 PCS 사업자 선정이 경제계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다. 기술표준과 관련해 CDMA와 TDMA 중 어느 것을 채택할 것인지 논란이 무성했다.

기술표준 논쟁은 1995년 5월 11일 PCS 사업권 획득을 준비하고 있던 한국통신이 PCS의 무선접속기술을 TDMA방식으로 개발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본격화됐다. 이는 한국이동통신과 1994년 5월 새로 출범한 신세기통신이 CDMA 방식으로 고객을 선점하게 되면 후발주자로서 두 회사를 따라잡기 쉽지 않다는 판단 아래 TDMA 방식 GSM 도입을 검토했던 것이다.

이 상황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판단한 한국이동통신은 한국통신과의 치열한 논리 대결을 준비했다. CDMA 개발 경쟁 상대인 신세기통신에는 기선을 제압하는 방법으로 타개책을 모색했다.

1995년 6월 12일부터 COEX에서 개최된 `95 정보통신 전시` 행사에서는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의 CDMA 이동전화 시연회가 예정돼 있었다. 서정욱 사장은 이 시연회에 참관할 기자단이 셔틀버스를 이용해 서울 광화문 정보통신부에서 서울 삼성동 COEX까지 단체로 이동할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 한국이동통신이 개발한 CDMA 시스템으로 버스 안의 기자들과 시연회 이전에 미리 통화를 나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승용차에 탑승한 서 사장이 기자단을 태운 버스를 인도하면서 승용차에서 버스 안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하얏트호텔에서 COEX까지 이동하는 도중에 한 번도 통화가 끊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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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CI선포. SK텔레콤은 회사명칭에 따른 기업이미지통합(CI)선포식을 갖고 세계 초일류 ICT기업으로 부상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1997.3.24)

◇최고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SK텔레콤은 1996년 1월 CDMA 이동전화서비스, 1999년 8월 IS-95B 개발, 2000년 10월 CDMA2000 1x 서비스 등 타이틀을 추가하면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통신대국으로 부상하는 데 기여했다. CDMA2000 1x EV-DO 서비스는 전송속도가 CDMA2000 1x망의 144kbps에 비해 16배 이상 빠른 최고 2.4mbps로, 이동 중에도 고속의 인터넷 검색은 물론이고 양방향 데이터 전송까지 가능한 서비스다.

SK텔레콤은 2004년 3월 12일 새벽 0시 41분 세계 최초의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 위성을 성공리에 발사했다.

SK텔레콤은 국내 최초로 카폰 형태의 이동전화 서비스를 개시한 1984년 4월 이후 26년 만인 2010년 5월 18일 2500만 번째 고객을 넘어섰다. SK텔레콤의 이동전화 고객 2500만명은 대한민국 국민의 51.2%에 해당된다. 국민 두 명 중 한 명이 SK텔레콤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의미다. 2012년 7월 기준 2680만 고객이 SK텔레콤을 사용하고 있다. 안드로이드폰 도입과 데이터무제한 요금제 출시로 촉발된 스마트폰 빅뱅으로, SK텔레콤 스마트폰 고객은 1500만명을 넘어섰다.

SK텔레콤의 매출 성장을 주도할 LTE는 2012년 7월 20일 LTE폰 400만 가입자 돌파를 바탕으로 세계 2위, 아시아권 1위의 LTE 사업자로 우뚝 섰다.


[표] SK텔레콤 세계 최초 기록과 주요 역사

1984. 3. 29 한국이동통신서비스㈜ 설립(자본금 2억5000만원)

1984. 4. 차량전화 업무 개시

1984. 5. 셀룰러 방식 차량전화 상용서비스 개시

1988. 7. 서울지역 휴대전화 서비스 개시

1994. 1. 한국통신 KMT 주식매각(선경그룹 전체 주식의 23% 인수)

1996. 1. 세계 최초 CDMA 디지털 휴대전화 상용서비스 개시

1997. 3.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으로 사명 변경

2000. 10. 세계 최초 CDMA2000 1x 상용서비스 개시

2001. 6. 세계 최초 이동전화 동영상 상용서비스 개시

2002. 1. 세계 최초 1x EV-DO 상용서비스 개시

2002. 5. 세계 최초 모바일 텔레매틱스 `네이트 드라이브` 상용화

2004. 3. 세계 최초 DMB용 위성 발사 성공

2004. 11. 세계 최초 유무선 음악포털(멜론) 서비스 개시

2006. 5. 세계 최초 핸드세트 기반 HSDPA서비스 상용화

2008. 3. 하나로텔레콤 인수 (현 SK브로드밴드)

2009. 3. SK텔레콤 창사 25주년

2010. 9. 국내 최초 데이터무제한 요금제(올인원) 출시

2011. 7. 국내 최초 LTE 서비스 상용화


2011. 10. SK플래닛 설립

2012. 1. SK하이닉스 인수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