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현상의 `그늘`
#최근 전력반도체(PMIC) 시장에서 급성장한 팹리스 업체 실리콘마이터스는 지난 2007년 설립과 동시에 미국 실리콘밸리에 디자인센터를 설립했다. 국내에서 PMIC 관련 고급 인력을 구하기가 힘들자 현지 인력을 직접 채용하기 위해서다. 허염 사장은 “국내에서 쓸 만한 인력을 찾기 어렵다. 현지 디자인센터를 통해 미국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를 직접 스카우트한다”고 전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최근 베트남 현지에서 시스템 반도체 인재 발굴 설명회를 개최했다. 국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매년 20% 이상 고성장하지만, 국내 개발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나온 고육책이다. 해외 우수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에서 석·박사급 전문 양성 교육을 받고, 국내 반도체 업체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시스템 반도체 인력 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반도체 산업 균형 발전을 위해 시스템 반도체 육성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지만, 국내에선 사람이 부족해 해외 인재를 수혈해야 하는 지경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반도체 전공 학생 수가 절대적으로 적어 인력 가뭄은 장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반도체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대학 입학 단계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시스템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매년 필요한 고급 인력은 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배출 인력은 300명 수준이다. 매년 수요의 40%가 모자라는 셈이다.
전문 교육기관이 양성하는 인력은 팹리스 업체들이 줄을 서서 데려간다. 매년 50명씩 반도체 설계 인력을 양성하는 ETRI SW-SoC 융합R&DD센터에는 우수한 인재 유치를 위해 팹리스 업체들이 경쟁한다. 국내의 우수한 석·박사급 인재들은 해외 반도체 업체에 취업하는 일이 많다. 인력 수급 불균형을 가중시킨다.
유현규 ETRI SW-SoC융합연구소장은 “해외 반도체 업체들이 우리나라 출신 엔지니어를 상당히 선호한다”며 “국내에서도 시스템 반도체 인력이 배출되지만 우수한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인력 수급난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나서 해외 인재를 데려오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성실하고 우수한 외국 인재를 수혈, 국내 산업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인력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기술 유출과 국내 일자리 감소 등의 우려도 있지만, 부족한 인력부터 채우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학 입학 단계부터 반도체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한 인프라를 마련하는 등 근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수한 고등학생을 유치해 인력 저변을 넓힐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 현대차, LG, SK 등 대기업이 모두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전략적으로 강화해 전문 인력 유치 경쟁이 이미 과열 양상”이라며 “수요 대기업이 대학과 연계해 특화 교육과 장학금 혜택 등 산학 협력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력 양성에 관심을 쏟아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m
,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