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일부터 시작된 단말기자급제(블랙리스트 제도)는 휴대폰 가격 거품을 없애고 보다 투명한 유통망을 구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개통되지 않은 단말기가 필요하고 보조금과 관련 요금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소비자가 기대했던 통신요금 인하 효과는 아직까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블랙리스트 요금제가 제공되는 경우라도 유심(USIM)이 호환되지 않거나 단말기 종류에 따라 멀티미디어메시지서비스(MMS)가 제한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현행 블랙리스크 제도가 새 단말기를 마련할 경우보다는 기존에 쓰지 않던 중고폰을 활용하기에 더 적당하다고 보고 있다. 쉽게 말해 최신 스마트폰을 마련하려는 사람에게는 이 제도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는 뜻.
통신요금 인하를 둘러싸고 블랙리스트가 힘을 쓰지 못하면서 이동통신사를 압박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지만 국회 입법조사처는 물론 관련 전문가들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실제로 입법조사처가 11일 내놓은 `통신비 인하 논의와 정책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일회성 통신비 인하나 소매요금 규제 중심의 정부 개입은 이용자 측면에서 만족할 만한 효과를 내기 어렵고, 민간사업자인 이동통신사의 경영 의지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마음만 먹으면 월 1만원으로도 스마트폰 사용 가능=
통신요금을 근본적으로 내리기 위해서는 경쟁적 시장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이동통신재판매(MVNO)의 경우 블랙리스트 관련 요금제를 발빠르게 선보이고 있다. MVNO란 KT와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업자에게서 망을 빌려 이동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말한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현재(2012년 5월)MVNO 사업자는 23개에 가입자는 총 72만여 명 수준이다. 전체 이동통신가입자 수에 비하면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작다. 반대로 말해 그만큼 시장 가능성이 높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초기 MVNO는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 외에 요금제가 다양하지 못하고 가입신청이나 서비스가 원활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단말기 수가 다양해졌을 뿐 아니라 특유의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소비자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여기에 블랙리스트 제도가 곁들여지면 그동안 통신서비스 품질에 차이가 없음에도 좋은 단말기를 구하지 못해 활성화하지 못했던 MVNO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CJ헬로비전은 올해만 30만 명의 가입자 유치에 나섰다. 이 회사는 KT 망을 빌리고 있으며 KT테크의 타키(모델명 : KM-S220)를 통해 24개월 약정으로 월 9,000원이면 충분히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다. 기존 이동통신사 요금제로 동급 스마트폰을 개통할 경우 못해도 3만원 이상의 요금제를 선택해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저렴하다. 초당 요금도 사용자 부담을 줄여 음성은 1.8원이고 영상은 3원, 메시지와 데이터를 종량제로 사용할 때마다 부담하면 된다.
스마트폰 자체도 듀얼코어 1.5GHz 클록과 안드로이드 2.3 진저브레드, 풀HD 동영상 재생 등 현역으로 사용하기에 무리가 없다. 주로 와이파이망을 이용하면서 카카오톡과 같은 메시지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저렴한 유지비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 상품권·포인트 적립 등 생활밀착형 서비스 접목=
같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더라도 기존 이동통신사보다 저렴한 것이 MVNO의 매력이다. 팬택계열 스카이 베가레이서 기준으로 24개월 약정에 마트피아 스마트 요금제를 선택할 경우 기본료 3만 7,000원에 무료통화는 200분, 무료문자는 350건에 데이터 500MB를 제공받을 수 있다. 단말기 할부금을 더해야하지만 24개월 약정을 통한 할인 혜택으로 인해 소비자가 월 부담하는 요금은 3만 8,500원이다.
SK텔레콤 기준으로 비슷한 요금제인 올인원34가 음성 150분, 문자 150건에 데이터 100MB를 제공하고 단말기 할부금을 그대로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여러모로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이색적인 요금제도 볼만하다. 뚜레주르33 요금제의 경우 이동통신사와 비슷한 혜택을 제공하면서 뚜레주르 상품권(20만원 선불)과 CJONE 포인트를 최대 5배까지 적립받을 수 있다. 제과점을 자주 이용하는 고객이라면 눈여겨 볼만하며 단말기는 베가레이서와 삼성전자 갤럭시M을 선택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CJ헬로비전 외에도 대기업 계열사가 MVNO 진출을 준비중이므로 다양한 부가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GS그룹의 경우 CS칼텍스, GS리테일과 같은 유통을 담당하는 그룹 관계사를 통해 각종 혜택을 소비자에게 묶어서 제공할 확률이 높다. GS그룹은 편의점과 마트, 주유소와 같이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유통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블랙리스트 제도가 활성화되면 MVNO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며 단말기 수급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개선되고 있다."며 "가계 통신비가 13만원이 넘는 만큼 통신품질에 차이가 없고 값이 저렴한 MVNO가 크게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KT경제경영연구소 역시 2012년 한 해 동안 MVNO 시장 규모가 6,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