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이 흘렀다. 과학기술 발전과 전자산업 초석을 다져 `전자업계 대부`로 불리던 김완희 박사가 타계한 지 이달 24일로 꼭 1주년을 맞았다. 타계 당시 고인은 업적을 인정받아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새누리당 국회의원 등 각계에서 조전이 쇄도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에 “과학기술 발전의 초석을 다지고 산업계 최초의 전문지를 창간한 고인의 열정은 국민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조의를 표했다.
1주년을 맞아 김 박사와 친분이 깊었던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을 강병준 전자신문 부장이 만나봤다. 김 회장을 통해 과학기술과 전자산업에 큰 족적을 남긴 김 박사의 족적을 뒤돌아 봤다. 아울러 원로 엔지니어가 보는 과학기술과 전자산업의 미래를 조망해 봤다. 김 회장은 김 박사가 컬럼비아대학 종신교수를 포기하고 귀국한 60년대 후반부터 줄곧 김 회장과 호흡을 같이했다. 도미 후에도 우리나라를 찾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만난 유일한 인물이다.
#대담=강병준 전자신문 벤처과학 부장
◇“김완희 박사와 오은철 수석이 전자산업 일등공신이다”
-강병준 부장(전자신문 벤처과학부)=김완희 박사가 작고한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다. 박사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아는데 어떤 추억이 있나.
▲김정식 회장(대덕전자)=김 박사는 서울대 전기공학과 2년 선배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 만난 적은 없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를 맡을 때 멤버로 참여하면서 알게 됐다. 전자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리도 많았다. 전자신문 창간도 그때 아이디어가 나왔다.(김완희 박사는 전자신문 초대사장을 지냈다) 전자산업 부흥을 위해 전문 언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전자신문(당시 전자시보) 이름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여러 분야를 다룰 수 있도록 `기계전자` `기계공업전자` 등 다양한 이름이 언급됐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자하나만을 다뤄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 고집이 영향을 주었다.
-강병준 부장=김완희 박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나. `전자`라는 말도 생소한 시절에 국가 경제정책 방향의 하나로 전자산업의 육성을 부르짖었는데, 반대도 많지 않았나.
▲김정식 회장=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격변기였다. “이런 산업이 중요하다. 저런 산업이 중요하다” 등 말도 많고 일부 산업은 반대도 많았다. 김완희 박사가 박 대통령에게 건의할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당시 오은철 경제수석(청와대 경제비서관)이었다. 경제수석이 경제개발 계획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김 박사를 밀어주었다. 창원 산업단지도 오 수석의 아이디어였다. 미군이 철수하겠다고 하는 상황이었는데 앞으로 국방 안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오 수석이 자체적인 방위산업에 투자하자고 했다. 창원 단지가 세워진 것도 이 때문이다.
-강병준 부장=김 박사와 대덕전자 설립과 인연이 있나. 대덕전자는 PCB 한 분야만 고집했는데. 당시 상황에서 대단한 결정이었다.
▲김정식 회장=김완희 박사가 라디오 단지 조성을 주장할 60년대 후반쯤, 그러니까 거의 전자산업 볼모지 때 PCB에 관심이 갔다. “해야겠다”고 결심한 배경에는 군대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 대위로 전역할 때까지 6년간 군에 복무했다. 전자공학을 전공해 입대하니 통신 장교 임무를 맡았다. 통신 장비를 다루다보니 자연스럽게 PCB를 알게 됐다. 전역 후 워낙 전자 바닥이 척박하니 갈만한 제조업체가 없어서 10년 동안 방랑 생활을 거쳤다. 이 기간 중 통신회사를 작게 운영했다. 당시 PCB를 소량 생산했다. 한국정밀기계센터(FIC) 주도로 해외 산업시찰단을 다녀와서 전자산업에는 반드시 PCB가 있어야 된다고 마음을 굳혔다.
◇“전자산업 기반 조성, 글로벌 업체의 공이 컸다.”
-강병준 부장=전자업계 원로로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신다고 들었다. 대덕전자만 해도 45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업력만 놓고 보면 삼성과 LG전자에 뒤지지 않는다. 과거를 뒤돌아보면 격세지감일 것이다.
▲김정식 회장=우리나라가 처음 전자산업을 시작할 때는 외국 업체, 특히 일본 기업이 국내에 들어와 조립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전자산업 기초가 없었다. LG전자 전신인 금성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전자산업에 뛰어들었다. 금성도 바닥에서 시작했다. 10년 뒤 삼성전자가 전자산업에 손을 뻗었다. 당시 금성에서 삼성에게 `전자산업만은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만큼 기반 인프라가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강병준 부장=초기에 전자산업 틀을 잡는데 외국 업체의 기여가 컸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기반 인프라를 닦는데 외국 업체가 적극 나선 배경은 무엇인가.
▲김정식 회장=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발단이었다. 당시는 우리나라에서 먹거리를 무엇으로 해야할까하는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제조업 분야에서 가능성을 보인 것은 `아시아의 네 마리용`이라 불린 우리나라·홍콩·대만·싱가포르였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김완희 박사의 노력이 역시 컸다. 김 박사가 앞장서서 전자산업에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청와대에 이야기를 많이 했다. 라디오 산업 단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세부 실행 계획이었다.
◇“PCB 산업 성숙 분야지만 여전히 희망적이다”
-강병준 부장=PCB 시장에 뛰어들 때 벤치마킹이라든지 도움을 받은 곳이 있나.
▲김정식 회장=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일정에 맞춰서 진행됐다. 기술력은 해외에서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 협조가 많았다. 처음에는 생산규모가 너무 작아 협조받는 것도 힘들었다. PCB가 절대로 필요하다고 판단한 국가 정책의 영향도 컸다. PCB는 주문후 생산 방식인데 `규모의 경제`가 안 되면 사업하기 힘들다.
-강병준 부장=대덕전자가 PCB 산업에서 급성장한 배경은 무엇인가.
▲김정식 회장=정부에서 전자교환기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수요가 늘었다. 라디오·TV·PC 등 시기별로 제품이 다양해지면서 PCB도 함께 성장했다. PCB는 대표적인 디바이스 산업인데 세트산업이 활성화 되니 함께 성장하게 된 것이다.
-강병준 부장=제조업이 시들한 분위기다. PCB 산업에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김정식 회장=부품 제조업 상황은 다 비슷하다. PCB 생산의 경우 이전에는 미국 25%, 일본 25%, 유럽 25% 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가 25%를 차지했다. 이제는 대부분이 중국이 담당한다. 확실히 인건비가 저렴하고 대규모로 생산해야 가격경쟁력이 생긴다. 고부가가치 기술을 제외하고는 중국이 다 맡고 있는 듯하다.
-강병준 부장=PCB 이외의 다른 분야는 관심이 없나.
▲김정식 회장=경영에서 물러났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창업 당시로 돌아가도 계속 PCB를 했을 것이다. 주변에서는 다양한 산업 분야를 다루지 못하고 PCB만 하느냐 묻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부품, 전자 산업할 때 세계적인 기술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실패한다. 기술 투자비용은 한정돼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 투자가 분산된다.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한다. PCB도 그렇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로 바뀌는 상황에서 기술을 선도하지 못하면 사업 못한다.
◇“동반성장,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만들어야 한다”
-강병준 부장=동반성장과 상생 경영이 화두다. 그러나 총론은 공감하지만 각론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김정식 회장=동반성장과 공생 발전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은 국내에서 싸우지 않는다. 애플처럼 해외 기업과 전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품업체도 대기업 기술과 경쟁력을 맞춰주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런 전제가 없이 동반성장은 힘들다.
-강병준 부장=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지적도 많다. 대덕전자만의 노하우가 있는가.
▲김정식 회장=대덕전자는 경기도 안산이 기반이어서 지역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설비 투자하면 의무적으로 장애인을 고용해야한다. 대덕전자의 경우 안산에 있는 장애인 의료원에 공장을 지었다. 대덕전자 작업복 생산을 그쪽에 맡겼다.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복 물량은 겨울에, 동복 물량은 여름에 주문한다. 안산 빈센트 의원에도 지원해 외국인 노동자와 빈곤계층을 도와주고 있다. `안산지역은 우리가족의 지역이다`란 생각을 가지고 복지사업에 신경 쓰고 있다.
-강병준 부장=과학문화재단도 설립한 것으로 알고 있다.
▲김정식 회장=환갑이 되던 해 1억원을 투자해 해동과학문화재단을 설립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주변에서는 1억원으로 무슨 재단을 만드냐는 비판이 많았다. 당시에는 회사가 어려워 많이 투자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100억원 이상 갖추고 있다. 전자학회지, 통신학회지 등을 발간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뿌듯한 것은 어린이 과학관 설립이다. 지역 초등학생 등 1년에 3만여명의 어린이가 과학관을 찾는다.
◇“이공계 미래 어둡지 않다. 열정을 가져라”
-강병준 부장=이공계 기피현상을 비롯해 취업난까지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산업계 원로 엔지니어로 조언한다면.
▲김정식 회장=이공계 기피 현상은 엔지니어가 50년 수명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기업에서는 50세 기준으로 임원으로 올라가느냐, 퇴직하느냐가 갈린다. 50세를 넘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은 많다. 대학진학률이 높아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것도 문제다. 일거리만 있으면 열정을 가지고 달려들었던 우리와 세대와 많이 달라졌다. 소재부품 중소기업이 지금 사람이 없어 거의 다 문을 닫는 상황이다. 대학생도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강병준 부장=인생 선배로 이공계 학생들에게 할 말이 많지 않나.
▲김정식 회장=일본 이니모리 가즈오가 쓴 `인생방정식`을 보면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 50%는 부모에서 받는다. 나머지 50%는 자신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사고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무엇을 해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있어야 열정이 생긴다. 열정이 노력이 된다. 아무리 명문대를 나와도 열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신뢰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엔 기업에서 조직력이 부족하다고 불평이 많다. 조직력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수직적인 관계든 수평적인 관계든 믿지 못하면 제대로 된 조직이 될 수 없다.
-강병준 부장=마지막으로 국내 제조업체가 앞으로 유념해야 할 점을 꼽으면.
▲김정식 회장=중국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기술은 아직 일본 영향력이 크다. 스마트폰을 열어보면 일본 기술력이 보인다. 반도체와 PCB만 우리가 하고 나머지 부품은 중국이 생산하지만 하이테크놀로지는 아직까지 일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삼성전자의 경우도 지금 반도체, 메모리를 기반으로 휴대폰과 TV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앞으로 10년을 걱정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차세대 먹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정리=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