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박사님들의 잇단 `외도`

정부출연연구기관 20여곳이 운집한 대덕특구가 또 시끄럽다.

출연연 통폐합과 법인해체를 주 내용으로 하는 정부 거버넌스(지배구조) 개편안으로 지난겨울 논란이 일더니 `공교롭게도` 올해 들어서는 연구원 비리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뇌물을 받은 혐의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A책임연구원이 지난주 불구속기소됐다. 3개월 전에는 K-1전차 설계도면을 미국으로 유출한 혐의로 한국기계연구원 K책임연구원이 구속됐다. 지난달에는 지식경제부 공무원이 K책임연구원으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추가 구속됐다.

한국전력 원자력발전소 납품비리 건은 연일 이슈다. 원자력 안전 품질인증을 책임지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뭘 했냐는 소리도 들렸다. 지난해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로우주센터 건립 과정에서 토지보상을 둘러싼 비위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2010년에는 재료연구소에서 대형 연구비 횡령사건이 터졌다. 2009년엔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업무상 횡령 건으로 구속됐다. 2006년엔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이 군사기밀 유출 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과학기술계 사건 건수가 다른 분야에 비해 아무리 적더라도 훨씬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 통념상 큰 비난을 비켜가기는 어렵다.

유구무언이다. 잘못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사회지도층이자 식자층인 박사들이 저지른 범죄라서 사실 더 뼈아프다. 원전 안전성 확보나 국가 기밀 수호, 외국 추격으로부터의 기술 보호는 연구원의 기본 덕목이다. 박사를 채용할 때 국민윤리나 한국사 과목을 추가해서라도 도덕 재무장을 꾀할 판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식경제위원회 간사였던 부산 출신 조경태 의원(토목공학 박사) 질의가 가슴에 와 닿았다. 강조점은 두 가지다. 실적 없는 연구원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연구원으로서 국책사업을 수행할 때는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다.

정부출연기관들은 지금 기관평가가 한창이다. 하필 이런 시점에, 이런 사건이 터졌냐고 볼멘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이참에 연구원 성과지표(KPI) 개발을 고려해 볼 만하다. 기관 성과 누적치를 공개하고 기관장 평가에 반영해도 된다.

“학문에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 “부귀영화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지난 2004년 타계한 최형섭 박사의 묘비에 쓰인 글귀다. 과학기술계 대부로 불리는 최형섭 박사의 `과학 정신`을 되새겨보자. 현재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


박희범 전국취재 부장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