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반값`의 딜레마

최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반값`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하지만 반값 상품의 열풍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반값 마케팅은 대형 할인점이 포문을 열었다. 지난해 롯데마트가 `통큰` 브랜드로 치킨을 판매한 이후 저가 상품을 연이어 선보였다. 다른 유통점도 가세하면서 올해 거의 모든 제품으로 할인 경쟁이 확산되는 추세다.

전자제품도 예외일 수 없다. 기존 가격의 절반을 싹둑 깎은 모니터와 노트북이 소비자를 유혹한 지 오래다. 최근에는 나름 `신상`으로 취급받는 스마트TV까지 반값 제품이 나왔다. 통신 시장에서도 이동통신재판매(MVNO)서비스가 나오면서 `반값 통신료`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모두 가격 거품을 빼 소비자에게 돌려주겠다며 가격 경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소비자는 두 손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경기 둔화로 지갑이 가벼워진 상황에서 같은 제품을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다니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벌써 반값 제품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온다. 당장 절반 가격에 팔렸던 전자제품은 수리비와 애프터서비스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TV는 소비자원에 접수된 건수를 비교하면 대다수가 `반값TV`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값TV의 나머지 반값은 수리비로 충당할 상황이라고 입이 쑥 나왔다.

반값 제품은 시장에도 딜레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수요뿐 아니라 품질과 서비스에 따라 가격은 천양지차다. 소비자가 얻는 실제 효용 가치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명품이 대표 사례다. 원가에 비해 턱없이 비싸지만 소비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비정상적인 가격은 무엇보다 기업에 독이다. 가격 파괴를 주도하는 업체 대부분은 공교롭게 유통 쪽이다. 유통이 가격 결정권을 쥐면 제조는 신제품 개발과 혁신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영국 할인점에서는 좀처럼 신제품을 찾아보기 힘든데 이는 유통업체로 가격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신제품을 개발할 여력을 잃은 탓이다.

기업이 가격 경쟁에 휘말려 이윤을 내지 못하면 투자가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결국 성장이 멈추고 사업 기반이 무너져 시장과 산업이 휘청거릴 수 있다. 소비자에게도 부메랑이다. 당장은 달콤하지만 더 나은 품질과 서비스를 포기해야 하고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가격은 시장의 선순환을 만드는 출발점이다. 좀 과장해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경영의 진리는 따져보면 가격을 지키기 위한 기업의 처절한 몸부림인 셈이다. 소비자도 당장 싼 맛에 길들여지기보다 멀리 봐야 한다. 반값 경쟁의 마지막 피해자는 바로 소비자기 때문이다.


강병준 벤처과학부장 bj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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