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전투로 얻은 1200만원, "이렇게 쓰다니…"

“제가 게임을 하는 사실을 주변에선 잘 몰라요. 쑥스럽기도 하고, 굳이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경남 김해시에 사는 박 모 씨는 합성수지 재활용공장을 운영하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박 씨의 오랜 취미는 주말마다 가는 낚시다. 그리고 10년 이상 남몰래 이어온 또 다른 생활의 활력소가 바로 온라인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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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종수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왼쪽 세 번째)과 엔트리브 직원들이 2400만원 기부금을 전달하며 기념 촬영했다. 이벤트 상금을 기부한 박 씨도 참석을 권했지만 사양했다.

박 씨는 최근 온라인게임으로 얻은 1200만원 상당의 상금을 유니세프에 선뜻 기부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길 바란다는 뜻을 전하자 게임사도 상금과 같은 금액인 1200만원을 기부에 더했다. 외부에 알려지기를 극구 사양했던 박 씨를 어렵게 인터뷰했다.

박 씨가 거액의 상금을 얻게 된 온라인게임은 엔트리브가 서비스 중인 `천자영웅전`이다. 게임 내에서 이용자끼리 힘을 합쳐 `길드(게임 내 소모임 단위)`를 만들고 천하통일을 이루면 수장에게 금을 제공하는 이벤트다.

그는 이 게임에서 닉네임 `히든`을 쓰는 길드 대표다. 게임 속에서 한달 넘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경쟁만 있지 않았다. 승리하기 위해서 대립하는 상대편과 타협도 필요했다. 마치 삼국지처럼 정치와 전투가 이어지면서 결국 박 씨가 이끄는 길드가 천하를 통일했다.

박 씨는 “게임 내 천하통일을 위해서는 더 큰 동맹을 맺어야 하기 때문에 상대편 수장을 만나려고 서울까지 올라가서 설득했다”며 “기부라는 목적을 밝히니 얘기가 쉽게 풀렸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 잘나서 얻었던 결과물이 아니고 모두 힘을 합쳐 얻었던 결과”라며 “처음부터 1등을 하면 기부를 하자고 게임 내 동료들과 의견을 모은 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온라인게임은 협동과 경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도 기부에도 흔쾌히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자신도 온라인게임으로 단지 재미뿐 아니라 친구를 얻고 더 많은 사람과 기쁨을 나눴다고 전했다. 나이와 재산, 학력 등 사회적 장벽은 게임에서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박 씨는 게임 내 어려운 전투를 함께 치러낸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친구가 됐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취미나 친구를 만나기 어렵지만 게임에선 달랐다. 그는 “나이 차이가 나도 게임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여행을 같이 갈 정도로 가깝다”고 자랑했다.

게임은 여러 가지 역기능을 일으킨다. 아쉬운 점은 게임의 역기능만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다. 박 씨의 사례는 게임이 타인을 돕는 따뜻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게임의 역기능과 순기능은 공존한다. 아무리 한쪽만 바라봐도 이 사실에 변함은 없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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