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가 해외시장에서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품질과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최근 몇 년간 현대기아차가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대적인 IT 혁신활동이 큰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올 1/4분기에 유럽 시장에서 5.7%의 시장점유율로 BMW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난 3월 미국 시장에서 역대 최대 월판매량을 달성하며 점유율 6위로 올라섰고, 같은 달 중국 시장 판매량은 7.8%(현대), 19.7%(기아)가 늘어나는 등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9.8%였던 중국 시장점유율은 올 1/4분기에 1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금 세계 자동차업계는 무명의 한국 자동차 기업의 성장 신화를 이끈 배경으로 IT 혁신을 주목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가속화된 IT 혁신 활동이 현대기아차를 내수 시장 독점 기업에서 글로벌 시장의 신흥 강자로 바꿔놓는 동력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가트너 등 해외 리서치회사들은 현대기아차의 업무 혁신을 가능케하는 디지털 공급망 역량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가트너는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SCM(포천 500대 기업 대상) 순위에서 현대기아차를 세계 자동차 부문 1위로 꼽았다. 처음으로 도요타를 제친 것으로 2008년 부터 진행된 IT혁신 노력이 일궈낸 성과다. 지난해 말 유럽에서 개최된 자동화 관련 콘퍼런스에서 공개된 `유연생산자동화시스템`도 해외 전문가들과 자동차 기업들로부터 주목받기도 했다.
현대기아차의 IT 혁신은 재무·판매·생산·연구개발 등 업무프로세스 전반에 걸쳐 이뤄졌거나 진행 중이다. 지난해 완료한 글로벌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과 글로벌 공급망관리(SCM) 시스템 구축 작업과 현재 확장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제품수명주기관리(PLM) 프로젝트가 대표적 사례다.
현대차는 미국 현지에서 매출 원가가 75.7%를 기록해 전년대비 0.8%포인트 떨어진 것도 플랫폼 통합과 공장 자동화 시스템 덕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현대차의 이원희 재경본부장은 2011년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2011년 하반기 생산능력을 회복한 일본차의 대공세 속에서 현대차는 높은 공장 가동률 유지와 제품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법인에서의 저재고 전략 등을 통해 지속성장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미국 시장에 선보일 싼타페, 엘란트라 등 신모델과 유럽 시장 기대주인 i40는 모두 IT 접목을 통해 생산량을 극대화하면서 재고를 줄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ERP로 글로벌 경영 토대=현대기아차의 글로벌 ERP 시스템 구축은 2007년 시작돼 지난해 완료된 대단위 프로젝트였다. 기아차는 지난해 8월 글로벌 ERP 운영을 시작했고, 앞서 현대차도 인도 법인과 호주 법인 등에 추가 구축을 통해 글로벌 ERP 시스템 구축을 완료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앨러바마 공장을 시작으로 해외에서 한국으로 확산됐다는 점에서 타 기업과 달랐다. 북미 시장을 비롯한 해외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해외 생산 및 판매법인에 표준 ERP 시스템을 운영하도록 함으로써 각국 판매·생산 법인에 재무·회계, 인사, 구매 영역 글로벌 표준 업무 기준을 정립했다. 생산 공장에도 표준 ERP를 구축한 자동차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이를 내수 시장 중심 프로세스를 깨는 도구로 삼았다. 각국의 판매·생산·구매·재무 정보가 하나의 시스템에서 자동 취합되는 토대를 완성, 경영 속도를 높여갔다.
SCM, 구매포털 등 타 글로벌 시스템 기반 시스템 역할을 하면서 판매-생산계획-구매를 연계하는 인프라가 됐다. 각 대리점과 법인의 판매 정보를 ERP에 입력하면 SCM 시스템을 거쳐 생산 공장의 ERP로 연계, 자재 발주까지 이어진다. 판매 및 생산, 재고 정보의 선순환 구조를 확보할 수 있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ERP 시스템은 표준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이라며 “구축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글로벌 비즈니스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 위한 토대”라 평했다.
◇`도요타보다 빠른 기업` 가능케한 SCM 시스템=현대기아차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주간 단위로 세계 대리점과 판매법인의 예측 정보를 받아 생산까지 직결되는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확산해왔다. 국내에는 이미 적용됐지만, 해외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글로벌 각 대리점의 수요를 해외 공장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판매-생산`을 연결하는 작업이 본격화된 것이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생산자 위주가 아닌 계획을 위주로 시장을 센싱해서 납기를 맞춰줄 수 있도록 체질을 바꾼 것”이라고 소개했다.
글로벌 표준 SCM 시스템 구축 작업은 2009년 현대차 북미법인 및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시작돼 유럽 등을 거쳐 터키, 인도 등 지난해까지 세계 판매법인과 생산공장을 대상으로 확대 구축됐다. 올 상반기 구축중인 중국 법인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작업 중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해외 및 국내 생산 공장별 자체 계획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차 생산 방식을 글로벌 실시간 판매 추이에 맞춰 바뀌도록 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차를 주문하면 판매법인이 이 데이터를 받아 ERP에 입력하면, 이 정보가 SCM 시스템으로 전달된다. 계획이 확정되면 생산 ERP로 이를 전달, 협력사 자재 발주로 이어진다. 이 순환은 주 단위로 이뤄진다. 아직 월 단위로 움직이는 도요타에 비해 4배 이상 빠른 속도다.
각 국가별로 대리점이 주문한 분량과 예측량을 받은 지역본부가 정보를 입력하면 SCM 시스템이 재고와 생산 가능 수치를 분석해 각 대리점으로 보내주게 되며, 이에 대해 지역본부와 대리점이 확정하면 그 결과가 본사로 전달된다.
예측치에 따라 주문량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은 관련 자재가 라인에 투입되기 3일 전까지다. 3일 후면 판매와 생산이 직접 연결되도록 한 것으로 주 단위 판매-생산 사이클과 더불어 이는 자동차 업계 최단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PLM으로 R&D 협업 속도까지=지난해 시작된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PLM 시스템은 2단계 시스템 개발을 앞두고 계획을 수립 중이다. ERP와 SCM 등 생산·구매 시스템과 연계하는 등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폭넓은 범위의 R&D 시스템 개발로 꼽힌다. 개발 속도를 높이면서 디자인 부문과 설계 부문, 글로벌 생산 및 구매 등과 R&D 과정에서 협업할 수 있도록 한다. 신차 출시 기간이 짧아지고, 해외 소비자들의 최신 요구를 반영해 설계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현대차로서는 더욱 중요해진 IT 전략이다.
캐드관리, 엔지니어링 변화관리, 자재명세서(BOM)관리, 디지털목업(DMU) 개선 등 연구개발 핵심 영역을 대상으로 추진됐던 1단계 개발은 지난해 마쳤다. 제품데이터관리(PDM) 영역 중심으로 진행된 1단계 개발에서는 이 4가지와 다른 시스템과의 통합 및 연계, 이를 위한 데이터 변환 작업 등이 핵심 과제였다.
캐드 관리는 캐드 데이터 표준화와 통합적 관리를 도모한 것이다. 차체 설계에 사용되는 다쏘의 캐드 시스템 카티아(CATIA)의 데이터를 PTC의 윈칠 DB에서 개발자가 원하는 형태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엔지니어링 변화관리란 개발 과정에서 설계 변경(부품, 형상, 재질 등) 등이 빠르게 되도록 한 것이다. 또 BOM 시스템 개선을 통해 설계시 사용하는 BOM 데이터와 정비·발주 및 애프터서비스(A/S), 판매를 위한 BOM 데이터를 일치시켰다.
현대기아차는 2단계 프로젝트에서 테스트 영역 등으로 시스템 적용을 확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차후 협력사 확대 적용 등을 통해 R&D 과정에서 협업 수준을 한층 높이게 된다.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역량 강화를 위한 요구 사항과 IT 프로젝트 추진 내용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