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성회로기판(FPCB) 산업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스마트 기기의 핵심 `신경망`으로 각광받으며 양적, 질적 성장을 동시에 거두는 중이다. 지난 2003년 6000억여원에 불과했던 국내 FPCB 시장 규모는 10년도 안 돼 1조9000억원으로 성장했고 한국 제품은 해외에서 점유율을 늘리며 국내 PCB 산업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경박단소의 핵심 `FPCB`=연성회로기판이 탄생한 건 꽤 오래 됐다. 지난 1950년대 탱크 등 군사용 장비에 장착되기 시작한 이후 1990년대를 지나면서 컴퓨터·오디오·비디오 등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FPCB는 절연필름(PI) 위에 동박을 붙여 만든다. 재질이 딱딱한 경성기판과 달리 두께가 얇고 가벼워 구부릴 수 있다. 얇고 가벼운 특성은 전자 제품을 슬림하게 만든다. 그런데 스마트폰, 노트북, LED TV 등은 `경박단소`가 트렌드다. 여기에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주요 전자 업체들이 세계 IT 시장을 주도하면서 국내 FPCB 산업도 빠르게 성장한 것이다. 하경태 플렉스컴 사장은 “FPCB는 고밀도 및 3차원 배선이 가능하기 때문에 특히 모바일 단말기에 활용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지난 1991년 150억원에 불과하던 국내 FPCB 시장은 2001년 1000억원대를 형성했고 연평균 31%가 넘는 고속 성장을 기록하며 작년 한 해에만 1조9000억원을 돌파했다.
◇기업들 최고 실적 기록=한때 국내 FPCB 산업은 중국이나 대만 업체의 저가 제품 공세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형 업체들을 중심으로 과도한 설비 투자에 집중하면서 공급 과잉이 일어났다. FPCB 가격은 빠르게 떨어졌고 기업은 수익성 악화에 시달렸다. 지난 2006년에서 2008년 사이 국내 FPCB 시장은 나락에서 헤맸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역대 최고 실적을 갈아치우며 내적·외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FPCB 1위 업체 인터플렉스는 지난해 매출액 5177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이 회사는 지난 2010년에도 4192억원의 매출을 거둬 전년 대비 23.5%라는 고성장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2010년 307억원에서 2011년 404억원으로 증가하며 탄탄해졌다. 영풍전자와 비에이치도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다. 이들 회사는 각각 지난해 매출 3300억원, 1534억원을 달성했다. 영풍전자는 전년 대비 16.9%, 비에이치는 38%가 늘어난 액수로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셈이다. 이 밖에도 플렉스컴은 전년 대비 13.9% 증가한 1759억원을, 액트는 13.1% 늘어난 760억원을 기록해 모두 호황을 맞았다. 김상표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FPCB 산업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시장 1위 등극과 애플·아마존·모토로라 등 외국 스마트폰 업체 내 점유율 상승에 힘입어 외형과 수익성이 한 단계 높아지고 있다”며 “여기에 태블릿 출하량 증가, 스마트TV 수요 확대 영향으로 올해도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영향력 확대=국내 기업들은 공격적인 증설도 추진 중이다. 인터플렉스는 현재 안산 공장에 신규 공장을 증설 중이며 중국 공장을 포함, 작년 대비 37%나 생산 능력을 확충할 계획이다. 플렉스컴도 베트남에 FPCB 신규 공장을 구축했다. 대덕GDS도 FPCB에 투자를 검토 중이다. 특히 관계사인 인터플렉스와 영풍전자를 합치면 올해 매출액이 1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국내 FPCB 기업 가운데 1조원 달성은 처음이다. 국내 FPCB 업체들의 영향력 확대는 일본 FPCB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과 대응 능력에서 뒤처지고 있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애플, 아마존, 모토로라 등이 한국을 찾는 이유다. 우리나라 연성회로기판(FPCB)의 세계 점유율은 올해 30%를 넘어설 전망이다. 일본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주요 FPCB 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25.9%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8년 17.7%에서 매년 성장, 올해는 30.2%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에 일본 FPCB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08년 68.8%에서 지난해 60.1%로 떨어졌고 올해는 55.6%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업체 관계자는 “일본은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태국으로 공장 이전을 많이 했는데 지난해 홍수 영향으로 수급 문제가 발생했고 지리적 요인, 가격 경쟁력, 품질 모두 한국이 안정돼 해외 주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FPCB 기업 실적(매출액 기준. 단위: 억원)
(출처: 각사)
국내 FPCB 시장 규모(단위: 억원)
(출처: KPCA)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