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출범 후 지난 4년간 정보통신기술(ICT)·과학기술 거버넌스에 대한 평가는 혹평 일색이다. 관련 산업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정부 부처 내부에서도 회의론이 고개를 들 정도다. 새로운 융합 환경에 대응하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4년 전 조직개편 취지를 알리는 목소리마저 자취를 감췄다. 이러다가는 `현 거버넌스 백지화`라는 일방적인 논리 전개로 흐르며 자칫 4년 전과 같은 과오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누구보다 현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봤던 ICT·과기계 원로들마저 단순히 `정보통신부·과학기술부 부활론`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 지향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하자고 강조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옛 정보통신부로 회귀하는 것이라면 문제 있다.”(임주환 고려대 교수·전 ETRI 원장)
“옛날과 같은 과학기술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금동화 공학한림원 부회장)
ICT·과학기술계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지난 두 달간 진행된 전자신문 `ICT 거버넌스 새판을 짜자 미래 비전이 없다` 시리즈에 전해준 조언이다. 이들 말대로 단순히 과거로 회귀를 꾀하기보다는 현 거버넌스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더해 새로운 미래 거버넌스를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소통이 최대 덕목=현 거버넌스의 특징 중 하나는 기존 부처가 해체되거나 합쳐졌다는 점이다. 집중화된 컨트롤타워 기능을 없애고 분산형 조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었던 만큼 당연한 결과다. 이 과정에서 어떤 조직은 축소됐고, 반대로 어떤 조직은 확대됐다.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부처 간 갈등의 불씨가 계속 존재했다.
자연스레 소통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에서 자율적인 소통마저 부족하니 정부 정책의 물줄기도 충돌하기 일쑤였다. 문화·방송 콘텐츠 정책이 부딪혔다. 클라우드·NFC 등 신서비스 정책은 두말할 여지 없이 중복 현상을 겪었다.
한 부처 관계자는 “타 부처와 업무가 중복될 때는 협의도 하지만 내심 더 좋은 정책을 빨리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차기 정부 개편에서 구축할 컨트롤타워 형태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는 소통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컨트롤타워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거대 공룡부처가 되서는 곤란하다.
정부 조직개편 과정에서 부처 이기주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론이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칫 지난 4년간의 실패를 답습하는 또 다른 실패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다.
◇조직·인적 경쟁력 함께 발전시켜야=거버넌스 조직구조를 떠나 인적역량을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ICT 유관기관장은 “사실 정부 조직 형태나 체제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좋은 밑그림을 그려놔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 없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나타난 ICT·과기 경쟁력 후퇴가 거버넌스 구조뿐만 아니라 조직 구성원 역량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현 ICT·과학기술 유관 부처 직원들에게는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일부 그렇다는 것은 귀담아야 할 부분이다. 정부 구성원들이 빠르게 변하는 스마트 융합 시장에의 대응력과 고유 철학을 갖춰야 한다.
조직 문화도 문제다. 아직도 부처 산하기관 직원이나 관련 산업체는 주관 부처를 `갑`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거버넌스를 개편하되 각 조직에 담긴 구시대적인 문화나 관습도 함께 바꿔 미래 지향적인 정부로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는 경계 요인=현 거버넌스 실패를 뛰어넘어 미래 지향적인 거버넌스를 마련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적 변수다. 지난 4년간 방송통신위원회 운영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정책`이 아닌 `정치`에 흔들리는 부처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출범 당시부터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휘말렸던 방통위는 이후 방송·미디어 분야에서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책을 펼쳐 야당 비난에 시달렸다. 지난 정책의 잘못된 점을 가려내고, 미래 지향적인 정책을 주문해야 할 방통위 국정감사장은 번번이 여야 정쟁의 장으로 바뀌었다. 애초 출범 때부터 정치적 목적이 가미되는 등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다.
현 정부 출범 초기 `정보화`라는 말이 자취를 감췄던 것도 또 다른 예다. 현 정부 출범 초기 관련 부처는 정보화라는 용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전 정부에서 정보화를 강조하며 최대 업적으로 꼽았다는 이유로 해당 용어를 쓰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ICT·과기 정책 발전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예였다.
현 거버넌스에서 얻은 교훈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과거로 회귀가 아닌 미래 지향적인 거버넌스를 찾아나가는 것, 내년 초 차기 정부 출범까지 우리가 준비해야 할 과제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