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이 9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느 선거와 마찬가지로 투표율이 관심사다. 최근 전국 선거 투표율은 50~60% 수준에 머물렀다. 정치 무관심이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인이지만 지정된 투표소에서만 투표를 해야 하는 환경 영향도 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전자투표 제도 도입을 추진했다. 전자투표를 도입하면 등록된 주소지와 상관없이 어느 투표소에서든 투표를 할 수 있다. 전자투표 제도는 4·11 총선에 도입되지 못했다. 전자투표 제도가 도입되지 못한 배경과 전망을 분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005년 터치스크린 방식 전자투표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유권자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전자투표시스템은 이듬해인 2006년 10월 개발이 완료됐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현재도 일부 당내 경선이나 조합장 선거 지원에 시범 적용될 뿐이다. 국가 선거에 적용되는 시점은 예상조차 하기 어렵다.
◇정당 내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아=전자투표를 도입하지 못한 큰 이유는 정당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공직선거법 278조 제4항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및 개표 사무처리를 전산화해 실시하고자 할 때 이를 선거인이 알 수 있도록 안내문 배부, 언론매체를 이용한 광고 기타 방법으로 홍보해야 하며 그 실시 여부에 대해 국회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과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전자투표 도입을 위해 정당 간 협의가 필수인 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006년 10월 전자투표시스템 구축을 완료한 후 정당 간 협의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했다. 반면에 정당들은 전자투표 제도 도입 내부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 김용옥 새누리당 기획팀장은 “최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당내 경선 시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한 바 있지만 국가 선거에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논의는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용식 민주통합당 본부장도 “장기적으로는 국가 선거에 전자투표가 도입되는 것이 옳지만 내부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전자투표 제도 도입이 내부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당리당략 때문이다. 전자투표 제도를 당선율을 높이는 데 부정적 요인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전자투표를 활용하는 층이 특정 연령대에 몰려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전자투표시스템 및 네트워크 불안정으로 발생되는 문제도 우려 사항이다. 정보화 소외계층의 투표 기회 박탈이라는 시각도 있다. 종이투표에 익숙한 문화적 배경도 전자투표 제도 도입에 걸림돌이다.
◇전자선거추진협의회 7년 동안 회의 6번 열어=전자투표 제도 도입을 위한 정치권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3월 공직선거법 제278조에 근거, 전자선거추진협의회가 출범했다.
현재 협의회는 정윤재 한국정치학회장을 위원장으로 유정현·최규식·이명수·홍희덕·윤상일 국회의원을 비롯해 정계·학계 전문가가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협의회는 전자투표 관련 △추진방향 및 전략 △시행을 위한 정치·사회적 기반 조성 △부처 간 역할 설정 및 업무 분담·시행 △효과적 추진을 위한 각종 협의 등을 수행하도록 했다. 협의회 산하에 전자선거실무추진단도 뒀다. 추진단은 협의회 실무지원 및 세부정책 조정·협의를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정당 추천인과 유관 정부부처 실·국장급으로 구성했다. 전자선거 사업에 관한 조사·연구 및 사업추진 상황을 협의회에 보고하는 역할을 맡는다.
전자투표 제도 도입을 위한 정치권의 노력은 협의회 출범까지다. 협의회는 출범한 지 7년이 지났지만 회의 개최는 6번에 불과하다. 산하에 전자선거실무추진단을 두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회의가 자주 열리지는 않는다. 한 관계자는 “전자투표 제도가 도입되지 않아 논의할 내용이 없다”며 “그러다 보니 회의 소집을 안 한다”고 전했다.
◇IT 인프라 구축 예산 확보 관건=전자투표 시행을 위한 IT 인프라 구축도 쉬운 얘기는 아니다. 무엇보다 예산 확보가 관건이다.
전자투표 시행을 위해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이는 모든 유권자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정보시스템이다. 유권자 조회·확인이 실시간으로 가능해 어느 투표소에서든 투표를 할 수 있다. 전국 1만3000여개 투표소에는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으로 조회·확인이 가능한 단말시스템과 통신망 구축이 필요하다. 통신망은 네트워크 보안 강화를 위해 상용망보다는 국가기간망 활용이 대두된다. 전자투표를 시행하는 터치스크린 전자투표기도 배치해야 한다.
IT 인프라 구축비용은 변수가 많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통신망 구축을 제외한 모든 시스템 구축비용은 총 1353억원으로 추산한다. 통신망 구축비용을 추가하면 2000억원대를 넘어선다. 세부적으로는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 구축 비용 27억원 △전자투표기 884억원 △선거인조회단말기 442억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006년 시범 적용을 위한 전자투표시스템 구축을 완료했다. 이 시스템은 투표장에 터치스크린 투표기를 설치, 유권자가 어느 지역에서든 개인 ID로 지역구 화면을 찾아 투표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투표 후 개인ID 데이터는 자동 삭제하고 투표 기록만 남는다. 별도 종이로 투표기록을 남겨 전산 오류로 인한 문제를 예방토록 했다.
김용희 중앙선거관리위윈회 선거실장은 “지난 2월 공직자선거법이 개정돼 전자투표 선행과제 중 하나인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며 “가능한한 올해 시스템을 구축해 2013년 재·보궐 선거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전자투표=투·개표 과정을 모두 전산화해 종이가 아닌 컴퓨터 기반으로 투표를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가 도입을 추진 중인 전자투표는 터치스크린 방식이다. 유권자는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으로 본인 확인을 한 후 터치스크린에 투표권을 넣으면 해당 지역 후보 기호·성명·정당명·기표란이 나온다. 터치 방식으로 해당 후보에게 투표하면 자동으로 데이터가 저장돼 개표 및 검표 시스템으로 전송된다. 별도 저장장치를 둬 데이터 저장 이중화 체계도 갖춘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