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말을 결산기일로 정한 상장사들의 정기주주총회가 막바지다. 그런데 주총을 마친 기업은 전체 상장사의 10%에 불과하다. 대부분 오는 23일 이후 주총이 몰려 있는 까닭이다. 시쳇말로 `떼 주총`이란 말이 틀리지 않은 상황이다. 웬만하면 주총이 없었으면 하는 게 상장사들의 다같은 마음인 듯하다. 오는 30일까지 주총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는 경우도 많다.
올해 주총은 내달 15일 발효되는 개정 상법을 상장사들이 반영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개정 상법은 이사의 책임 한도 축소, 대표이사에 사채발행 위임, 배당액 결정권한 이사회 부여 등 경영 효율성을 개선한 굵직한 내용들을 포함했다.
이사의 책임한도 개정안은 최근 1년간 보수액의 6배 이내로 제한한 것이다. 물론 고의나 중대 과실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은 예외다.
재무제표 승인과 배당에 관한 결정 권한도 대표이사 등 집행임원에게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사채발행도 이사회 자율성이 강화된다.
회사 지배구조 제도를 좀 더 엄격하게 만들어 투명경영을 유도하고, 경영 안정성을 확보해 투자자를 보호하자는 게 핵심 취지다. 기업이 점점 글로벌화한 환경에서 자칫 과감한 투자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지는 점을 고려해 투자의사 결정을 더욱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이사의 책임을 축소한다거나 이사회 권한을 강화한다 해도 주주와 기업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하긴 어렵다. 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기업도 생길 것이란 우려에 있다.
왜 기업은 주주총회를 한꺼번에 개최할까. 혹여 주주총회에서 성가신 안건을 무더기로 처리하려는 속셈이 아닐까. 물론 시장에 공개된 기업이 그럴리야 없겠지만 그런 뜻이 추호라도 있다면 주주 역할은 명백해진다.
기업이 제대로 일을 해 성과를 내는지, 혹은 도덕적 해이와 무사안일에 빠져 길을 헤매는지 감시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주총이 한꺼번에 열리더라도, 자신이 주권을 가진 회사 주총은 뚫어져라 지켜봐야 한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