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동남아시아·중남미 등 디지털, 고선명(HD) 방송을 시작하는 이머징 마켓에서 중국 업체 저가 공세와 일본 업체 선점 때문에 국내 방송시스템 산업이 활로를 잃어가고 있다.
14일 국내 방송 장비·수신제한시스템(CAS)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 중소기업 6개사는 말레이시아 통신사 TM넷이 IPTV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에 컨소시엄을 이뤄 입찰했다 실패했다.
성능평가(BMT)에서 1등을 했지만 가격 경쟁에서 밀렸다. 중국 화웨이와 ZTE 시스템구축(SI) 컨소시엄이 국내 컨소시엄이 써낸 가격의 50%로 입찰 가격을 적어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을 받는 중국 장비사들은 가격 경쟁력이 우월하다. 중국 IT서비스 업체들은 헤드엔드 단에서 셋톱박스까지 토털 시스템을 공급한다.
필리핀에서도 일본 `ISDB-T` 방식을 디지털TV 표준으로 채택해 일본 업계가 방송장비·솔루션을 대부분 납품하고 있다. 도시바는 필리핀에 셋톱박스 공장을 세워 디지털 전환을 현지에서 지원한다.
중남미·아프리카 지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남미에서는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페루가 디지털TV 방송 표준을 ISDB-T로 결정해 일본 독무대가 돼가고 있다.
디지털방송·IPTV 등이 구축되고 있는 일부 아프리카에서도 중국이 경제개발협력기금(EDCF)를 활용한 차관 형태로 진입하고 있어서 국내 중소기업이 공략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이 지역에서도 방송 시스템 구축을 하면서 표준을 중국 `CMMB` 방식으로 결정하는 사례가 많아 앞으로 미국식 `ATSC` 방식 장비를 주로 생산해 온 국내 업체 판로는 점점 줄어드는 셈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지난 2007년 수출입은행이 EDCF에서 베트남에 디지털방송 인프라 확충사업을 시행해 127억4800만원을 집행한 후 회사 개별적으로 접촉해 사업을 수주하고 있지만 컨소시엄을 이뤄 선물 투자를 하는 공격적인 글로벌 기업과 가격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다.
이한범 한국방송기술산업협회 사무총장은 “이머징 마켓 대부분 나라에서 방송 시스템을 한꺼번에 발주하는데 한국에서는 중소기업이 모니터·중계기 등 장비 따로, 미들웨어·CAS 따로 각개 전투를 벌이고 있어서 들어갈 틈이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대기업 IT서비스 업체가 컨소시엄을 만들어 중소기업이 참여하도록 하면 공략하기 조금은 수월할 것”이라며 “정부도 한국식 방송 표준을 수출해 민관 공동으로 현지 진출을 하면 방법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