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포커스]14T, 뇌지도 선명하게 그린다

가천의과학대학교 뇌과학연구소 지하 1층에는 여러 대가 합쳐진 거대한 평면 모니터가 있다. 모니터를 통해 촬영실에서 찍은 뇌 단층사진을 확대해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두 장의 뇌 단층사진을 비교해본다. 두 사진의 전체 윤곽은 같은데 한쪽은 굵은 핏줄만 대략 구분할 뿐 구름에 쌓인 듯 흐릿하다. 다른 한쪽은 실핏줄까지 모두 생생하고 선명하게 보여준다. 흐린 사진은 일반 병원에서 주로 사용하는 1.5T(테슬러) MRI(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 사진이고 선명한 사진은 7T MRI 사진이다. 사람의 뇌 구조와 작용을 얼마나 더 잘 알 수 있는지는 바로 여기에서 판가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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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뇌공학 분야 대부로 불리는 조장희 뇌과학연구소 소장. 1975년 세계 최초로 PET를 개발했으며 인체영상기기 분야 삼총사인 CT(컴퓨터단층촬영)·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MRI를 모두 개발한 과학자다.

조 소장이 다시 `간 큰` 도전에 나섰다.

“14T MRI를 개발하려고 합니다. 대략 7T보다 네 배 정도 더 선명한 뇌 단층촬영 사진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가 도전하는 14T MRI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장비다. 세계적으로 7T MRI는 40여대가 설치됐으며 일본과 프랑스가 11.7T MRI를 개발 중이다. 최근 호주가 11.7T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하고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조 소장은 지난 2005년 개발된 7T에서 중간단계 없이 14T를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

“이미 다른 곳에서 하는 것에 도전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14T 개발에 성공하면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또 이를 통해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14T MRI 개발에는 약 1500억원이 소요된다. 이 중 500억원은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이 사재를 털어 투자키로 했다. 부족한 1000억원은 국비 지원을 받을 생각이다. 조 소장은 이를 정부에 제안했으며 다음 달 정부 결정이 내려진다. 정부 투자가 결정되면 오는 2015년까지 개발을 끝낼 계획이다.

그가 14T 개발을 주장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14T 개발은 젊은 과학자들에게 더 넒은 시각과 자신감을 심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젊은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간이 커져야 뭔가 큰일을 합니다. 산수를 해봐야 미적분을 풀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형 프로젝트를 젊은 연구자들이 보고, 또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14T는 결코 종착역은 아니며 또 다시 28T로 진화하는 것 역시 시간문제라고 강조했다.

14T MRI가 제공할 고해상도 영상은 뇌공학은 물론 뇌의학 분야에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할 전망이다. 고령화 시대에 수반되는 파킨슨, 알츠하이머 등 주요 뇌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상품화 되는 과학은 크게 의미가 없고 노벨상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남이 못하는 기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조 소장은 이미 MRI와 PET영상을 결합하는 퓨전 이미지로 뇌공학계 주목을 받고 있다.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는 지난 2005년 국내 처음으로 7T MRI를 도입, 이를 PET와 셔틀방식으로 결합했다. 이른바 세계 최초 PET-MRI 융합기기(NRI 7.0T)가 그것이다. 두 기기를 서로 다른 방에 두고 방 사이를 간이 선로를 이용해 오가며 순차적으로 환자의 뇌를 촬영한다. 이 방식은 뇌 연구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왔다. PET는 신경화학물질 변화를 잘 관찰하지만 해상도가 낮기 때문에 이를 고해상도 MRI가 보완해준다. 연구소에는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3613명을 대상으로 한 뇌 퓨전영상 연구를 진행했다. 괄목할만한 연구 성과도 쏟아지고 있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젊은 과학도가 뇌 연구를 비롯한 거대과학 분야에 뛰어들기를 희망했다.

“우수 학생이 외국으로 나가고 젊은 과학자들은 연구비 확보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현실입니다. 연구자가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젊고 유능한 과학자를 어떻게 모을지에 국가적 차원의 관심이 필요할 때입니다.”

◇MRI=자장이 발생하는 자석구조에 인체를 들어가게 한 후 고주파를 발생, 신체부위 수소원자핵을 공명시켜 각 조직에서 나오는 신호의 차이를 영상화하는 장치다. 인체에서 메아리와 같은 신호가 발산되면 이를 디지털 정보로 변환, 영상화한다.

◇테슬러(Tesla)=자장(자석)의 단위로 1테슬러는 1만가우스다. 지구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지구 자장은 0.2가우스다. 숫자가 높을수록 발생시키는 자장이 크고 그만큼 영상 선명도가 높아진다.

◇PET=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의약품을 이용해 인체에 대한 생리·화학·기능적 영상을 3차원으로 나타내는 핵의학 검사장비다. 각종 암을 진단하는 데 주로 활용되며 암 치료 효과 판정 등에도 사용된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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