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개편 작업은 현장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단순 외국 사례나 행정이론 차원의 접근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송종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원장은 과기계 화두로 부상한 출연연 개편 작업에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단순 관심 차원이 아니라 성공적 개편을 위해 연구원이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출연연은 새로운 미션과 역할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기관장과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입니다. 물론 출연연 내부 의견수렴과 공감대 형성은 반드시 필요한 선행조건입니다.”
그는 이 같은 프로세스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율과 책임이라는 토대 위에 스스로 가야할 방향을 정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또 이 역할이 바로 STEPI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과학기술 정책 두뇌역할을 담당하는 STEPI 송종국 원장을 만나 출연연 개편 작업 방향과 올해 주력업무에 대해 들어봤다.
-연초부터 과기계가 출연연 개편작업으로 술렁인다. 연구원에서도 뭔가 이에 대한 연구와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이미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가 마련한 개정법안 골자는 국가연구개발원이라는 법인격을 만드는 것이다. 이 법안 통과와 별도로, 국가연구개발원을 어떻게 구성해 우리가 바라는 출연연의 융합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얘기다. 시행령 시행규칙 등이 잘 정리돼야 한다고 본다. 오히려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 사실 개정안에는 출연연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미션을 가지고 가느냐에 대한 큰 그림이 담겨 있지 않다.
출연연에 소속된 연구원들은 이것을 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STEPI가 중지를 모으고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을 계획이다. 출연연 미래 모습이 그려지면 소속된 연구원들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거시적 관점에서 출연연 미션을 간단히 정리한다면.
▲규모로 볼 때 국내 출연연은 모두 다 모아도 삼성전자보다 작다. 이제는 출연연을 미션별로 묶어 임계규모를 늘려야 한다. 동시에 국민이 바라는 공익목적과 사회적 이슈를 연구해야 한다. 일례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국민 필요성에 의해 생긴 연구기관이고 국민이 원하는 부분을 연구하고 해결한다. 그 규모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출연연은 공익적 목적을 위한 모습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선 융합이 필수다. 보건 분야만 하더라도 바이오, 의약, 의료장비, 나노 등이 다 포함된다. 지금은 기술별로 나눠져 융합이 잘 안 된다. 융합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생각하고, 수단이 활발히 활용되는 연구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출연연도 공감하고 찬성하고 있다. 완전한 공감대를 가지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올 한해는 이 부분이 STEPI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출연연 외에 STEPI가 올해 주안점을 둔 사업을 소개한다면.
▲앞서 언급했듯 과학기술은 각종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따라서 과학기술정책도 기후변화, 환경 문제, 저출산 고령화 등 이슈들을 해결하는 미래전략 차원 패러다임에서 마련돼야 한다. STEPI도 올해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과학기술정책, 사회적 이슈 해결에 기여하는 과학기술정책, 국제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과학기술정책 연구를 구체화해 나가고자 한다.
이를 위한 경영목표도 세웠다. 우선 선제적 정책연구를 통해 국정의제를 선도키로 했다. 개방형 융합연구를 통한 사회적 기여도 제고하고 글로벌 협력을 통한 국제사회 공헌도를 확대할 방침이다. 증거 기반 과학기술 정책연구로 정책신뢰도를 제고하고 인재경영을 통한 연구전문성도 강화할 예정이다. 이 밖에 양방향 소통경영을 통한 창의적 조직문화를 구현할 방침이다.
-국제사회 공헌도를 확대한다고 했다. 국내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선진국과 비교해 어떤 수준인가.
▲과학기술에서 중요한 지표인 연구개발투자를 볼 때 한국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2010년도 국내 연구개발투자 총액은 37조원으로 세계 7위다. GDP 대비 비중으로는 3.74%로 OECD 국가들 중 3위다. 한국보다 연구개발투자 금액이 큰 미국, 일본, 독일 등도 GDP 대비 비중은 모두 한국보다 낮다.
정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도 세계적 수준이다. 정부 연구개발투자는 금액 기준 12조원으로 세계 6위며, GDP 대비 비중으로는 0.85%로 OECD 국가들 중 3위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 정부의 연구개발투자는 보건·환경 등 삶의 질 향상 분야보다 경제개발 분야에 더 큰 비중이 있다.
연구원 수로 비교하면 인구 1000명당 5.4명으로 일본(5.1명)과 미국(4.7명)을 제치고 가장 높다. 하지만 여성 연구원 비중은 16.7%로 영국(37.9%), 프랑스(27.4%)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저출산·고령화 등 국가적 차원 미래 위기요인이 커지고 있다. 미래에 대비한 거시적인 과학기술 비전과 정책방향이 있나.
▲물론 어려운 주제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이제 미래사회 도전에 대응해 창조적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로 재정립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미래사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전망이 필수다. 달리 말하면 미래연구(foresight)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같은 미래연구를 위해 미래연구센터를 조직 내에 설치했다. 그리고 전문가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미약한 미래연구 역량과 미래사회 복잡성을 고려할 때 여러 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글로벌 메가트렌드에 따른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연구기관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미래연구기관과 공동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올해부터 세계 13개국 14개 기관과 EU 제7차 국제미래연구아카데미(IFA) 과제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다. 우수인재 유치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글로벌화 진전에 따른 인력 세계화와 다양한 국가 진출은 당연한 현상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인력 유출 추세가 급격하다는 것이 문제다. 최근 선진국 일자리 전망이 불투명하다. 쉽게 말해 좋은 과학기술 일자리를 창출해 해외 우수인력을 국내로 재유치하는 여건 마련이 필요하다. 해외에서 취업한 인재도 국내에서 창업 등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문직업 분화가 미흡하다. 종합적 기술창업 지원제도와 연구개발서비스업 지원제도 확충 등을 통해 이공계 인력 일자리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과학기술정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이 많다. 끝으로 과학기술정책이 왜 필요한지 설명해 달라.
▲과학기술정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본격 시작됐다. 과학을 주제로 한 보고서가 미국 연방정부 과학기술정책 근간이 됐다. 이 보고서는 대학연구를 강화하고 과학기술정책을 국방 중심에서 국리민복을 위하는 정책으로 전환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과학기술이 각국 정부의 중요 정책 대상이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경제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생산요소다. 세계를 지배하는 기업이나 국가들은 모두 과학기술력이 강하다. 과학기술 발전은 인류를 기아와 질병에서 해방시켰다. 최근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환경·에너지 문제, 기후변화 등 지구적 이슈들을 해결하는데도 과학기술 도움이 가장 필요하다. 따라서 한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은 그 나라의 경쟁력과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종국 원장 프로필
△1956년생
△학력사항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서강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미국 텍사스A&M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주요경력
-2011~현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제12대 원장
-2010~2011 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
-2004~2005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기획조정실 실장
-2003~2005 한국재정·공공경제학회 이사
-2003 과학기술기본계획 총괄분과위원회 부위원장
-1999~2001 과학기술부장관 정책자문관
-1991 대통령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