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광다이오드(LED) 핵심 소재인 사파이어 잉곳과 사파이어 웨이퍼의 구분이 무너지고 있다. 잉곳 또는 웨이퍼만 생산하던 기업들이 서로의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내 최대 사파이어 잉곳 제조업체인 사파이어테크놀로지는 사파이어 웨이퍼 시장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웨이퍼 사업을 위해 지난해 설립한 자회사 ‘에스티에이’의 조직 구성과 설비 구축이 최근 마무리 됐다. 에스티에이는 월 6~10만장의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으며 고객사 확보를 위한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파이어테크는 그간 잉곳만을 전문적으로 제조, 판매해왔다. 웨이퍼 사업에 진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반대로 웨이퍼 업체가 잉곳을 양산하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대표적 예가 한솔테크닉스다.
이 회사는 올해 총 461억원을 투자, 현재 55대 수준인 사파이어 잉곳 설비를 연말 155대로 3배 가량 늘릴 계획이다.
회사 측은 “잉곳 일부를 자체 생산해왔는데, 이것으로는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보고 비중 확대를 위해 증설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움직임이 관심을 끄는 건 산업 내 역학 관계에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간 웨이퍼 업체들은 사파이어테크와 같은 기업에서 만들어진 잉곳을 가져다 기판(웨이퍼)으로 가공하고 이를 다시 LED칩 업체에 공급하는 사업을 영위해왔다.
하지만 이제 잉곳 업체가 직접 웨이퍼 사업까지 진출하게 되면 서플라이체인(공급망)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시장 내에서도 새로운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잉곳 업체들 역시 웨이퍼 업체들이 잉곳을 자체 조달할수록 거래처를 잃는 셈이 돼 새로운 시장 개척이라는 과제를 안게 된다.
일례로 사파이어테크는 웨이퍼 시장에 진출, 성장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만 한솔테크닉스, 일진디스플레이와 같은 웨이퍼 고객사를 잃을 수도 있다. 각 사마다 복잡한 셈법이 작용할 것으로 보이는데, 잉곳과 웨이퍼의 통합은 큰 흐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배훈 디스플레이뱅크 수석연구원은 “미국 루비콘처럼 기존에는 구분돼 있던 사파이어 잉곳과 사파이어 웨이퍼가 하나로 합쳐지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웨이퍼보다 잉곳 생산이 더 어렵지만 누가 더 경쟁력을 먼저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