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차전지 소재 산업이 새로운 도약대에 섰다. 한국 2차전지 기업들의 세계 경쟁력 확보에 힘입어 소재 산업에 대한 기업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는 것. 세계 경기 침체와 불투명한 경영 환경에도 거침이 없을 정도로 과감하고 공격적이다.
◇국내 2차전지 소재 산업 현황=다시 충전해 쓸 수 있는 2차전지는 4대 핵심 소재로 만들어진다.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이 바로 그것이다. 2차전지는 원가에서 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5% 정도에 그치는 반도체와 달리 50%에 육박한다. 그만큼 많은 부가가치가 소재에서 창출되는 셈이다. 그 가운데 이 네 가지 물질을 ‘핵심’으로 분류하는 건 2차전지 재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양극재의 경우 총 재료비의 35%, 음극재는 10%, 분리막과 전해액은 각각 20%, 15%를 각각 차지한다. 우리나라 2차전지 소재 산업은 편차가 있다. 양극재와 전해액은 각각 70%, 86%까지 국산화가 됐다. 이 분야에선 세계적 한국 기업도 있다.
하지만 분리막의 경우 국산화율은 25%에 그친다.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 사이 리튬이온 통로 역할을 하는 소재로 2차전지의 안전성과 직결된다.
음극재는 더욱 심하다. 국산화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실상 100%를 해외 수입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대 소재 중 하나라도 없으면 2차전지는 만들지 못한다. 국내 2차전지 및 소재 산업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라도 분리막과 음극재 국산화가 중요한 이유다.
◇대기업 ‘사각지대’ 도전=하지만 이같은 소재 산업 불균형도 깨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인 2차전지 소재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GS칼텍스는 경북 구미 산업단지에 음극재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가동을 앞두고 있는 구미 공장은 연산 2400톤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이곳에선 소프트 카본계 음극재가 양산될 계획이다.
2400톤은 새해 세계 소프트 카본계 수요 전체를 모두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소프트 카본계 제품은 세계 음극재 시장의 10%를 차지한다.
흑연계 제품이 가장 각광을 받는데, 여기엔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켐텍이 뛰어 들었다. 포스코켐텍은 충남 연기군에 연 2400톤 규모의 공장을 짓고 양산 직전이다. 2400톤은 지난해 세계 음극재 시장의 약 10%에 해당한다.
GS칼텍스와 포스코켐텍은 이제 첫 발을 디딘 셈이지만 공격적인 증설을 예고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 2차 전지 소재 분야에서 다크호스로 주목받고 있다.
GS칼텍스는 세계 시장에서 ‘메이저 플레이어 진입’을, 포스코켐텍은 2020년까지 양산 규모를 11만톤으로 늘려 전세계 40%를 점유하겠다는 각오다.
분리막에는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이 뛰어 들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04년 말 독자 기술로 분리막을 상용화하면서 세계 시장 14%를 점유했다.
LG화학도 독자적인 분리막 기술로 GM, 포드, 르노, 현대기아차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에 제품을 공급해 점유율이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 1등 소재 탄생 예고=대기업들의 투자는 물론 중견·중소기업들의 잇단 사업 확대도 주목된다. 특히 양극재, 전해액 분야에서 세계 1등을 향해 본격적인 규모의 경쟁에 나선 기업이 있다. 엘앤에프, 파낙스이텍, 후성 등이 대표적이다.
엘앤에프는 이미 세계 3대 양극재 제조사다. 현재 자회사 포함 연 9000톤 규모의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있는 이 회사는 내년 초까지 1만1000톤으로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양극재 분야 선두인 니치아(일본), 유미코아(벨기에)와의 본격적인 경쟁을 위해서다.
세계 3대 전해액 제조 기업인 파낙스이텍도 규모를 키우고 있다. 파낙스이텍은 최근 논산에 연간 1만톤 규모의 공장을 완공했다. 이는 기존 공장보다 2배 더 큰 시설이다.
파낙스이텍 변준석 사장은 “앞으로 미국, 유럽, 동남아 등지에도 생산기지를 늘려 세계 1위 전해액 제조회사로 발돋움 하겠다”고 강조했다. 파낙스이텍 경쟁사는 우베흥산(일본), 미쓰비시화학(일본)이다.
전해액 소재 리튬염을 공급하는 후성도 세계 1위에 도전 중이다. 후성은 2013년까지 리튬염 생산량을 3000톤까지 늘릴 예정이다. 증설이 끝나면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다퉈온 일본의 간토덴카의 생산 능력을 넘어서게 된다. 리튬염은 칸토 덴카(일본), 스텔라케미파(일본), 모리타화학(일본)이 주요 제조사다.
◇도전은 이제부터=2차전지 소재는 실제 제품에 채택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품질과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 길다. 소재 개발이 바로 공급과 직결되지 않는 이유다.
국내 많은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로 소재 산업 경쟁력 향상이 기대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먼저 기술력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지난 8월 발간한 ‘리튬이차전지 산업동향’에서 “국내 2차전지 산업은 연평균 15% 성장율과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소재 분야 기술력은 선진업체 대비 50% 수준”이라며 “소재 분야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국가 차원의 로드맵과 체계적인 연구개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리튬, 코발트 등 핵심 원자재 확보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2차전지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국가별로 자원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박상진 한국전지산업협회 회장은 “현재 2차전지는 한국과 일본이 앞서 있지만 지역적 편재성이 강한 기초 광물을 중국이 빠른 속도로 선점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은 경제성 있는 해외 광구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며 자원 개발을 위한 국가 시스템 및 금융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재부품분야에서 가장 빠른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는 2차 전지 분야 세계 주도권 확보를 위해 기술개발, 원재료확보 등 산관학의 체계적인 시장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