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 도래는 도서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 놨다. 굳이 서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책을 받아볼 수 있게 됐고, 독서 평균 시간도 줄었다.
이같은 변화 소용돌이에 맞서 온 교보문고 역사는 이한우 유통지원실 상무의 지난 20년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상무는 표준 바코드를 통해 오프라인 도서 유통 체계 정립을 주도하고 온라인 도서 유통 시대를 여는데 기여했다.
이 상무는 1994년 전산과장으로 교보문고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96년 국제표준도서번호(ISBN) 도입으로 체계 마련에 앞장섰고, 이듬해 국내 첫 온라인 서점 ‘인터넷 교보문고’ 개발을 주도했다. 책 뒷면에 바코드조차 찍혀있지 않았던 당시 ISBN 도입은 국내 도서 유통업계의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이후 온라인 시장의 신흥 주자들에 맞서 인터넷 교보문고를 이끌었던 그는 올해 교보문고의 전 업무를 새롭게 정의한 차세대 통합 유통관리 프로젝트를 완료하면서 또 한번의 전기를 열었다.
이 상무가 말하는 교보문고의 IT는 도서 유통의 근본적 경쟁력을 키우는 핵심 동력이다.
◇시스템 개발은 철저히 사용자 위주로=지난해부터 교보문고 IT와 물류를 총괄하는 최고정보책임자(CIO)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상무는 회사 최대 규모 차세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보문고 모든 제품 정보를 표준화하면서 모든 업무를 새롭게 정의한 이 프로젝트는 교보문고 역사에 획을 그을 만한 대규모 혁신 작업 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교보문고는 지난 15년간 익숙해져 있던 프로세스를 자체 진단했다. 주요 개선 방향을 수립, 1년이란 짧은 시간 내에 시스템 구축까지 완성시켰다. 도서 공급 리드타임 감소와 수작업 시간 단축 등 가시적인 성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무엇보다 빛을 발한 것은 이 상무의 사용자 중심 IT 리더십이다. 이 상무는 시스템에 대한 IT 개발자와 기획자 평가를 믿지 않는다. 철저히 사용자를 위한 시스템 만이 비즈니스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철칙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이끌어 온 인터넷 교보문고 실전 비즈니스 경험을 기반으로 다져진 철학이다. 비즈니스를 이해하지 못하면 개발도 어렵고, IT 자원을 통합해 인력 한계를 극복하면서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상무는 “IT 프로젝트에서 어려운 것은 개발이 아니라, 사용자와 개발자 모두가 하나가 돼 통합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획 그 자체”라 강조했다. 개발 과정에서 현업의 참여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다 기획한 사람들이 개발을 다 했다고 해도, 사용자들이 ‘OK’ 했을 때 비로소 IT가 경쟁력을 갖는다는 의미다.
이 상무는 이 같은 기조에 맞춰 비즈니스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는 IT 조직에 대한 변화도 구상하고 있다.
비즈니스와 IT의 융합으로 기존 ‘종이책’ 사업과 떠오르는 ‘디지털 콘텐츠’ 사업을 양면 지원할 수 있는 능동적인 IT 조직을 꾸려 나갈 계획이다. 비즈니스릴레이션십(BR) 기능 강화를 통해 사업부와 IT의 신속한 의사 공유가 가능하고 프로젝트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프로젝트 추진과정부터 ‘검증’=사용자 중심 IT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새로운 시도도 이뤄졌다. 바로 ‘애자일 방법론’으로 불리는 프로젝트 추진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사용자들과의 지속적 협의를 해 나가며 수정을 하는 방식으로, 리더십과 명확한 목표 없이 성공하기 어렵다.
실제 대부분 사용자들이 프로젝트 당시 관여를 하지 못한 채 프로젝트가 완료되고 나면 ‘이 시스템은 아니다’라 말하고, 평균 20% 이상의 갭이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 이 상무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개발 이후 모든 것을 바꾸는 데 적지 않은 공력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이 상무는 “개발의 방향성만 정립한 이후 수시로 IT-개발 업체-현업 사용자가 만나 토의 및 검증작업을 하는 애자일 방식으로 프로젝트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교보문고는 모바일 교보문고를 개발하면서 올해 처음 이 방식을 적용했고 향후 신규 프로젝트 추진 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빠른 의사결정과 지원으로 낭비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목표에 대한 방향 정렬에 유리하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불명확한 요구 사항에 대한 사전 검증 및 수정·보완이 가능한 데다 통합 테스트에 대한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
이 상무는 “개발 기간을 명확히 하고 어떠한 서비스를 만들지도 정의해 놓아야 한다”며 “기본 개념 없이 적용만 한다고 해서 반드시 애자일 방식이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당부했다. 위험 요소가 예측되는 부분은 초기 일정에 할당해 해결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등 사전 준비 체계가 필수다.
이 상무는 특히 변화가 빠르고 새로운 개념이 많이 적용되는 프로젝트 일수록 이 방식이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사용자 중심의 시스템 개발을 위한 교보문고의 혁신은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1등’ 목표=스마트 기기의 확산에 급증하고 있는 디지털 콘텐츠 유통을 위한 새로운 IT 인프라 마련은 이 상무의 핵심 과제다.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모바일 도서 유통 시대가 도래 하면서 새 기회를 잡기 위한 교보문고의 변신도 그렇다.
올해 디지털콘텐츠관리시스템(DCMS)과 모바일 교보문고 프로젝트를 잇달아 완료한 유통지원실은 교보문고를 디지털 콘텐츠 시장 1등 주자로 이끄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이끄는 이 상무의 각오도 남다르다.
DCMS는 다양한 스마트 모바일 환경에서 디지털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정보를 표준화하면서 향후 모바일 시장에서 교보문고가 도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기반이다. e북, 오디오북, 동영상북 등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서비스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상무는 “디지털 콘텐츠의 불법 복제 및 유통을 방지해 저작권을 보호하고 콘텐츠의 표준화된 플랫폼을 구축해 안정적인 통합 서비스 환경을 제공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모바일 교보문고를 위한 독자적 시스템 개발 플랫폼도 완성했다. 개발자들의 편의성을 높여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모바일 웹과 유기적으로 연결 가능한 하이브리드 앱을 구축해 웹과 앱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효과적인 개발 환경을 마련했다.
이 상무는 “오프라인 도서 유통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전락한 데 맞서 새로운 수익 모델 창출과 이를 위한 디지털 비즈니스에 집중할 때”라며 “새로운 환경에 맞춰 인터넷, 모바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새 시대에서도 1등자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필
1986년 교보생명 전산실에 입사한 이후 1994년 교보문고 전산과장으로 도서 IT 시장에 입문했다. 1996년 ISBN 도입을 주도해 국내 도서 유통 체계를 바로 잡았다. 1997년 인터넷 교보문고를 개발하고 2000년 핫트랙스 인터넷 쇼핑몰 구축 등 각종 온라인 사업 개발을 주도했다. 2007년부터 교보문고 온라인사업 본부장을 맡았으며 지난해 유통지원실로 발령, CIO 역할을 하고 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