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기둔화가 현실로 닥치면서 정부는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성장보다는 위기관리를 통한 안정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경제성장률 전망치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5%에서 3.7%로 과감하게 낮췄다. 정부는 유럽 재정위기 등에 대한 국제공조 노력이 가시화되면 하반기부터는 경제가 회복되는 상저하고의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전망 현실화=그동안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는 민간 경제연구소나 투자은행(IB)에 비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는 내년 성장률을 3.7%로 잡아 민간기관이나 경제연구소와 격차를 크게 줄였다.
3.7%는 지난 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전망치와 같은 수치고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의 3.6%와 별 차이가 없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현대경제연구원은 각각 3.8%, 4.0%로 정부 전망치보다 높다. 그동안 정부가 정책의지를 담아 가장 높은 숫자를 제시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전망치다. 그만큼 정부가 내년 경제 상황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대내외 경제여건을 반영해 경제전망을 현실화했다”며 “내년 경제정책은 경제활력을 북돋우고 서민생활을 안정시켜 공생발전 기반을 정착시키는 데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어두운 수출 전망=정부는 민간소비는 물가상승세 둔화 등으로 실질구매력이 개선되면서 3.1%증가, 설비투자는 수출증가세 둔화와 기업심리 위축으로 증가율이 3.3%로 크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수출과 수입 증가율도 올해 각각 19.2%, 23.2%에서 한자릿수인 7.4%, 8.4%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294억달러였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올해 250억달러로 떨어지고 내년에는 160억달러로 급감할 것으로 예측했다. 소비자물가는 올해 한국은행 물가목표 상한선인 4.0%를 기록한 뒤 내년에는 3.2%로 하락해 3%대로 복귀할 것으로 관측했다. 취업자 증가 수는 올해 40만명에서 내년 28만명으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시나리오 대응체계 필요하다=정부가 닥쳐올 불확실성과 위기에 미리 대비하는 것은 좋지만 ‘위기’와 ‘불안’을 현실 이상으로 키울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의기의식 고취’ 보다는 내년 우리나라 산업·경제 주체가 ‘위기’ 단계에 맞게 빨리 대처할 수 있는 시나리오 대응체계가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성장’은 아예 포기할 수 있다는 정도의 강도 높은 위기 대응을 주문하고 있지만, 기업간·업종간 편차는 여전히 큰 편이다. 대기업 주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공회의소 등이 내년 내수는 부진하겠지만, 수출로 만회할 수 있다고 기대를 높이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내수와 수출 모두에서 극심한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서민경제 안정’이 정부 슬로건이지만, 이날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참석한 자영업자, 주부, 학생들은 공허한 대책 앞에 “어려운 사정을 속시원하게 이야기한 측면은 있지만, 그외는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심 성장은 포기했으니,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겠다고 해주면 좋겠지만 이에 대한 시각차도 크다.
회의에 참석한 청와대 관계자는 성장은 포기할 수도 있으니, 고용은 늘려야 한다는 산업계의 공감 목소리가 나왔는가라는 질문에 “그런 얘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과 실질소득 확대에 따른 내수 진작이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표>2011~2012년 경제전망 요약
(전년동기비, %)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