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 정전사태 이후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뜨거운 감자다. 원활하지 못했던 초동대처에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의 기능을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전과 전력구조는 연관성이 없으며 통합은 시장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송배전과 계통운영이 분리된 지 10년이 됐다. 지식경제위원회는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한전과 전력거래소 통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조직 통합이 아닌 기술적 협조로 정전 대응해야
지난 9월 15일 발생한 순환정전은 여러 측면에서 전력산업에 많은 숙제와 고민거리를 던졌다. 지식경제부가 정전 태스크포스를 가동 중에 있으므로 정전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과 단기·중기·장기의 다양한 대책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향후에 이러한 정전이 재발하지 않고 최악의 경우에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9·15 순환정전은 기본적으로 당일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라는 물리적인 상황에 기반을 둔다. 예측 전력수요보다 최소 300만㎾ 이상의 수요가 발생해 운영예비력 수준에 도달했고 운영예비력도 표시된 것보다 부족했다는 점이 사태를 키웠다.
당일 냉방수요 증가를 사전에 감지하고 잉여 발전 공급력을 확보했다면 순환정전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일 공급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된 오전에 위기 대응 시스템을 사전에 가동하고 홍보를 했다면 그 피해 또한 최소화했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기후변화에 의한 기온 격차는 심해지고, 저렴한 전기요금으로 냉난방 전력수요는 과거 10년간 급증했다. 따라서 과거 방식의 전력수요예측 시스템과 공급력 확보 방식은 지금의 불확실성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더욱 선진화한 시스템으로 진화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력거래소 계통운용 기능과 한전 송배전 부문 통합 유무와 상관없이 순환정전의 위험은 존재할 것이다.
계통운용과 송전사업의 통합 여부는 북미형과 유럽형 두 가지로 대별된다. 북미는 복수의 송전사업자가 존재하므로 송전사업자와 계통운용자는 분리돼 있는 것이 정형이다. 유럽형은 통상적으로 송전사업자와 계통운용 영역이 통합돼 있다. 물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통합 여부가 정전 발생 혹은 정전 복구 효율성과의 연관성은 크지 않다.
유럽형이든 북미형이든 이들의 발전부문과 판매부문은 엄격하게 분리돼 있다. 발전부문 혹은 판매부문 효율성 향상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발전부문과 판매부문이 송배전사업과 결합돼 있으므로 현 시점에서 통합을 위한 전제 조건이 충족돼 있지 않다. 이는 전력산업구조에 대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전력 송배전 기능이 발전 및 판매와 분리된 이후 계통운용과 통합을 한다면 신뢰도 위원회와 같은 제3의 상설 전문기관 설립은 필수적이다. 국내 전력시스템이 과거와 달리 매우 복잡하고 대규모화한 만큼 정부기관의 기술적인 규제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현실적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정전 발생 원인은 수급 불균형뿐만 아니라 송배전 계통의 사고 또는 취약점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정전 예방을 위해 조직 간 통합보다는 발전 설비와 송배전 설비의 적절한 투자 유인, 안정성 여부에 대한 지속적인 기술 검토, 전기요금 정상화를 통한 수요 조절, 수요관리 극대화, 수요예측 선진화 등의 관점에서 전력산업계 전체가 협조하는 기술적 문제 해결이 우선이다. 지난 교훈으로부터 우리 전력산업계의 성장과 성숙이 있기를 기대한다.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 jbaepark@konkuk.ac.kr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계통소유와 운영, 한전 송전부문으로 통합해야
지난 9월 15일 전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사태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사상 초유의 혼란을 겪었으며, 많은 기업과 자영업자가 큰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사태의 원인에는 현상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이 있다. 현상적인 원인은 위기관리 시스템의 수준이 낮았던 데 있다. 매뉴얼이 현실과 맞는지, 훈련과 피드백은 제대로 된 것인지 모두 체크해야 했다. 가능했던 수요관리 자원은 전혀 동원되지 않았고, 정전 시 수요처별 우선순위 구분이 되지 않았던 것은 모두 위기관리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현재 전력산업이 가지고 있는 임시적이고 기형적인 구조다. 통합도 분할도, 그렇다고 경쟁도 독점도 아닌 세계에서 가장 희한한 체제를 10년간 유지하는 데 근본 문제가 있다.
우선 현상적인 것은 재빨리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정부와 전력산업계가 지금도 밤잠을 미루어가며 열심히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이번 일을 거울삼아 많은 부분이 개선될 것으로 믿는다. 반대로 근본적인 원인으로서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논의는 시간을 갖고 진행할 필요가 있다. 비록 이번 정전사태가 국가적으로 큰 충격을 준 것이 사실이고, 생각에 따라 빨리 구조개편에 대해 양단간의 결단을 내고 싶겠지만, 국가 경제적으로 미치는 충격이 크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거듭 연구하고, 토의해가며 차분히 진행하는 것이 옳다.
현상적인 원인(매뉴얼)과 근본적인 원인(산업구조)의 가운데쯤에 조직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전력 계통의 소유와 운영을 통합할 것인가 분리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이 구조적인 문제는 위 두 문제와 별도로 논의를 진행하고, 방침이 서는 대로 즉시 시행하는 것이 옳다.
그 이유는 첫째, 앞서 말한 현상적인 원인을 치유하기 위한 대책을 누가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계통소유와 운영이 통합되던, 분리되던 전력산업 전체 구조개편에 대한 논의는 별도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계통 소유와 운영은 통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상시 단기적인 대응능력 향상 차원에서 이는 당연하다. 비상시에는 간명한 조직체계가 복잡한 조직보다 소통체계가 우월하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서로 전화나 팩스,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파견 나온 사람 간에 의사를 주고받는 것보다 일관된 취합, 집행체제가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업무 효율성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투자와 관리, 그리고 운용은 개념적으로 분리될 수 있을지 모르나 물리적으로는 아주 긴밀하게 연계돼 움직일 수밖에 없다. 업무 중복이나 투자 중복은 말할 것도 없고, 투자자원의 효율적 운용과 원활한 운용을 전제로 한 최적 투자시점의 조절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남는 문제는 통합 조직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 지일 것이다. 당면 과제의 심각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답이 다르다. 가깝게는 올 겨울, 멀리보아 앞으로 4~5년은 우리나라 전력분야의 역사상 가장 심각한 기간이 될 것이다. 지난 순환정전에 비할 바 없는 최악의 사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금이야 말로 수급 안정성에 최선의 목적을 두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에 적합한 방안을 찾는 실용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전력 송전부문으로 통합하는 것이 최선이다. 축적된 경험과 DB를 무시하고, 굳이 에둘러 가야 할 이유가 없다.
전기요금 현실화도 빼 놓을 수 없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 요금을 현실화하는 것은 앞서 말한 모든 단기적·장기적 처방들의 기본요건이다. 근본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다.
이정동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교수 leejd@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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