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중사영(杯中蛇影)’
용어 풀이로는 술잔 속에 비친 뱀의 그림자라는 뜻이다. 중국 진나라 때 한 선비가 술잔에 비친 뱀 그림을 보고 ‘독이 들어있지 않은가’ 친구를 의심하며 괜한 병에 걸렸다는 데서 나온 사자성어다. 부질없이 의심을 품으면 엉뚱한 데에서 탈이 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우리 속담 가운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것과 유사한 표현이다.
우리 IT업계에는 ‘아이폰 쇼크’라는 트라우마가 있다. ‘뭐 스마트폰이라는 게 대단하겠어’ 하고 방심했다가 국내 휴대폰제조업체들이 큰 위축을 겪었던 것을 지칭한다. 불과 1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다.
스마트폰에서 받았던 충격이 스마트TV에도 그대로 투영되는 분위기다. 구체적 사업계획조차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우리 업계는 ‘애플TV’ ‘구글TV’가 어떤 모습일까 걱정이 많다. 국내 TV업체들이 스마트폰에서 겪었던 충격을 TV에서 다시 반복하지 않을지 우려를 넘어 노심초사하는 모습까지 관측된다.
최근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방한하면서 ‘국내 TV업체가 구글과 손을 잡아야 한다’거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식의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운용체계(OS)와 창의적 소프트웨어에 대해 국내 업체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하지만 하드웨어에서 갖춘 장점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폄하하는 것은 또 다른 과오일 수 있다.
현재 TV 글로벌 1, 2위는 삼성과 LG다. 수십년간 TV제조에서 역량을 쌓아왔다. TV사업에서 전자대국 상징으로 꼽히던 일본 소니를 제친 업체는 삼성과 LG뿐이다. 강력한 OS로 무장했다지만 구글 역시 삼성·LG를 배제하고 최적의 제조능력을 갖춘 협력사를 찾기 힘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드웨어에서 축적해온 장점은 분명히 소프트웨어와 대등할 만큼의 파워를 가진다.
상대방 전략을 연구하고 향후 다가올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에 자신의 장점을 잊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자산업부 가전유통팀장·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