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단가협상이 끝났는데, 7월과 8월 연달아 추가 판가인하를 요구하더군요. 이 때문에 9월부터 우리 회사 월 실적은 올해 들어 최악 수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중견 부품업체 A사 사장이 불만을 토로했다. A사는 세트업체 판가 인하 때문에 2차·3차 협력사 판가 조정 요청을 한 상태다. 이익이 급격히 축소되면서 원가 절감분을 하위 협력사에 전가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LCD 부품을 만드는 소재업체 B사는 상반기 두 자릿수 이익률을 기록했지만, 8월을 기점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 실적이 악화되면서 협력사에 고통분담 수준을 넘는 판가인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코스닥시장 입성을 준비했던 B사는 수익성 악화로 계획을 백지화했다. 상장은 3~4년 후에나 재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사태가 촉발한 글로벌 불황에 대한 위기감이 국내 IT 산업을 덮쳤다. 스마트폰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부정적 영향이 전자부품업체로 파급되고 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동반성장에 대한 논의가 봇물을 이뤘지만, 최근 글로벌 위기로 눈 녹듯이 수그러들었다.
A 대기업은 고위급 임원을 상생협력팀장으로 임명해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지만, 지금은 각 사업부별로 구매담당자에게 판가인하를 독려하고 있다. 상생협력팀은 유명무실해진 듯하다.
불황 속에 선방했다는 일부 대기업 소식이 불편하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반성장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 이전만 못하다. 최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작심 발언도 이런 세태와 무관치 않을 게다.
진정한 상생은 호황일 때보다 불황일 때 더욱 빛나는 법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금언을 우리 모두가 되새겨 봐야 할 시점이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