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학기술 첫사랑은 생물학이었다. 지금은 방향을 약간 선회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일반인은 다소 생소한 ‘바이오임상측정표준’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처음 접했을 때 ‘생물학’이라는 기초학문은 ‘생명공학(Biotechnology 이하 BT)’이라는 용어로 진화 및 대체되는 중이었다. 인류 건강이나 식량 공급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나라가 이 학문에 거액을 투자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유학 시절 의학전문학교 때문인지 생물학 전공생들이 굉장히 많았고, 강의 수요가 꽤 있다 보니 그들을 가르치는 귀한 경험과 경제적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이렇듯 연구 주제나 수요 특성상 BT는 예산이 부족하지 않은 학문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여러 면에서 ‘유용한’ 학문이다 보니 생물학 근간을 간과하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생물학은 ‘생명은 무엇인가(What is Life?)’라는 근본적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생명현상이 큰 퍼즐이라면 예리한 관찰과 관찰된 현상에 대한 그럴 듯한 가설, 그리고 가설을 배제하며 맞는 답을 찾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밝혀낸 기작이 퍼즐 조각 역할을 해 생명현상이라는 큰 그림의 신비를 밝힌다.
세포생물학과 분자생물학을 전공하던 박사과정 중에 본 세포들은 생명현상 비밀을 푸는 첫 단추처럼 느껴졌다. 세포 내부가 태풍보다 강력한 힘으로 소용돌이치면서도 물질이 규칙을 갖고 움직이던 현상, 특정 부위에 특정 물질을 입혀 예쁜 색으로 변한 세포의 현란한 이미지들….
현미경 아래 매혹적인 세포들은 지금도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있다. 이들이 나에게 생물학을 더 사랑하게 만들었다. 큰 그림을 맞춰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비효율적이고 어렵고 낮은 성공률을 보이는 경우가 부지기수지만, 생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는 이유는 작지만 중요한 생명현상에 매료되어서가 아닐까 싶다.
유학 중에 누군가가 게시판에 붙여둔 두 개 목록을 본 적이 있다. 미국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직업, 그리고 가장 존경받는 직업. 전자는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직업이었지만, 후자에서 1위는 놀랍게도 생물학자였다. 그 목록을 본 당시 대학원생들은 큰 자부심을 느꼈다. 지금도 많은 생물학자들이 밤낮없이 연구하는 이유는 자신이 처음 사랑에 빠졌던 그 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생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데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과 ’존경받는 직업‘ 순위 중 하나쯤에 끼워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생물학의 매력에 끌린 후배들이 주저함 없이 이 학문을 선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김형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kimhh@kriss.re.kr
후원: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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