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주택 세입자일수록 보험료 인상 가능성 높아
늘어난 재산액 대비 보험료 인상 폭도 고액재산가가 더 적어
전세금이 오르는 국면에서 영세주택 세입자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건강보험료가 고급주택 세입자보다 많아 논란이 예상된다.
최근 전세 가격 폭등세로 서민 가계의 부담이 커지는 만큼, 현재의 불합리한 기준을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월세 증가율 10위 지역이 보험료 증가율은 1위? =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건강보험공단 통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도봉구와 영등포구의 전·월세 가격 증가율은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각각 10위와 11위였지만 보험료 증가율은 나란히 1, 2위를 기록했다.
반면 용산구는 25개 구 가운데 전월세 가격 증가율이 가장 높았지만, 보험료 증가율은 11위로 중간 수준인 것으로 분석됐다.
전월세 가격 인상이 그대로 보험료 추가 부담으로 반영될 것이라는 논리로 보면 다소 의아한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현행 보험료 부과점수의 산정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건강보험공단의 보험료 산정기준은 고액 재산가들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내는 반면, 재산이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보험료 인상분은 더 낮아지도록 설계돼 있다.
고액재산가가 상대적으로 많은 용산구가 전월세 가격 변동이 가장 심했음에도 상대적으로 서민 비중이 높은 도봉구와 영등포구의 보험료 인상률보다 훨씬 낮게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용산구의 전월세 평균 가격은 7천490만원이었으며 평균 보험료도 8만6천884원으로 가장 높았다.
반면 도봉구와 영등포구는 전월세 평균 가격은 각각 4천929만원, 5천210만원으로 용산구와 큰 차이를 보였으며, 평균보험료도 용산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산 수억원 늘었는데 건보료 인상 0원? =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은 지역가입자가 속한 세대의 보험료 부담능력을 소득, 재산, 자동차, 생활수준 및 경제활동참가율 등 부문별 점수로 환산해 건강보험료로 책정하고 있다.
이중 전월세는 재산 항목에 반영되며, 지역 가입자의 전월세금이 속한 구간 점수를 기준으로 최종 보험료를 산출하게 된다.
문제는 최소 330만원에서 최대 100억원까지 50등급으로 구분된 재산등급 중 재산가액이 낮은 등급은 1~2천만원 단위로 촘촘히 설계된 반면, 재산가액이 높은 등급은 구간 폭이 최대 10억원에 달해 고액 재산가의 등급 상승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재산가액이 낮은 등급에 속한 지역가입자는 1~2천만원 정도의 전셋값 인상으로도 쉽게 기준 등급이 올라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반면 재산가액이 높은 구간의 가입자는 수억원 이상 전셋값이 올라야 보험료가 인상된다.
고액재산가의 전셋값이 수억원 올라 기준등급이 한 단계 상승한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수억원의 재산 증가액에 비해 보험료 상승액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어서 `역진성(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높은 세부담을 지는 것)`을 해결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가장 높은 등급인 49등급(90억원~100억원)에서 50등급(100억원 초과)으로 등급이 상승한 경우 보험료 추가 부담분은 7천608원이다. 그러나 이는 1등급(333만원~1천500만원)에서 2등급(1천500만원~3천만원)으로 상승했을때 추가로 내는 보험료(3천639원)의 두배 수준에 불과하다.
재산가액 변동은 10억원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이에 따른 보험료 인상분은 고작 3천원 정도에 그치는 셈이다.
◇인상된 전세가는 `재산`일까, `부담`일까 = 현재 건강보험공단이 전월세 가격을 건강보험료 산정에 반영하는 이유는 전월세를 일괄적으로 지역가입자의 `재산`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에 따르면 건강보험료 산정 시 반영되는 재산가액은 토지·건축물·주택·선박·항공기의 재산 과세표준 금액 뿐만 아니라 공단이 정한 방법으로 평가한 보증금 및 월세가액까지 포함된다.
주택 소유자와의 형평성 문제와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이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한 보건당국의 고뇌로 해석되지만, 문제는 최근처럼 전세금의 폭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서민들에게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전월세 가격이 잇달아 오르면서 보험료 부담을 호소하는 누리꾼들의 민원이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모씨는 국민건강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오른 전세금을 메우기 위해 대출받은 확인서까지 보여주면서 조정받을 수 없느냐고 했더니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집을 매매한 사람과 비교하며 대출 안 낀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는데 이 경우는 매매와 다른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또 다른 김씨 역시 홈페이지에서 "보증금 500만원에 30만원 주고 월세를 사는데 전세 3천만원으로 환산해 보험료를 징수한다니 어이가 없다"며 항의하기도 했다.
김태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 사회정책국 국장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전세가격 문제를 건강보험료 산정 시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한다면 이는 정부의 직무유기"라며 "비합리적인 제도는 국민을 불신을 고착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높은 등급의 건보료 부담을 늘릴 수도 있겠지만 전셋값 외 소득이 없는 지역가입자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률을 높여 건보료 산정 시 소득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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