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다. 법무법인들과 변호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규모 소송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란다. 그것도 몇십 년만에 한 번 올까 말까한 특수라는 표현까지 동원된다.
계기는 개인정보보호법이다. 지난 주말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고를 막기 위한 개인정보보호법이 새롭게 발효됐다. 공공기관과 정보통신사업자 등 일부 사업자에만 적용되던 개인정보보호 의무가 마침내 모든 공공기관과 사업자, 협회, 동창회 등 비영리단체로까지 확대됐다.
6개월의 유예기간이 주어지긴 했지만, 당장 300만개 이상의 제조업, 비디오대여점, 대리기사, 택배사, 1인사업자들도 시스템을 구비해야 한다.
관례(?)였다고나 할까. 우리 기업은 그동안 개인의 신상정보와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정보를 과도하게 수집, 보관해 왔다. 비즈니스가 명목이었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악용에 대한 대책이 있을리 만무하다. 주민번호, 전화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 유출이 빈번했다. 개인의 의료정보가 노출되기도 하고 금융 정보가 새나가기도 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게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건이다. 얼마 전에는 한 대형 포털이 보유 중인 3500만건의 개인정보가 한꺼번에 유출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까지 일어났다.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DB) 매매가 은밀하지만,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상황도 한몫을 했다. 전화사기, 메신저 피싱 등 금융사기로도 이어졌다.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 중차대함에 비해서 그렇다는 의미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그간 현실적인 여건을 이유로 시행이 미뤄져왔다. 대규모 정보유출 사건의 빌미가 됐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기업들의 상황이다. 기업들의 현실은 ‘아직도’ 녹록지 않다. 개인정보보호법의 중요성에 비춰 그렇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어느 정도 문제를 파악하고 인력도 갖추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무엇이 문제인지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기업 중 63.5%가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보안투자가 전무할 정도라는 얘기가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비상이 걸렸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시행됐고, 법무법인과 변호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변호사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곧 ‘돈’ 되는 시장이 열린다는 의미다. 소송전의 가시화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무차별 송사가 예고되는 대목이다. 특히 서비스·유통기업들의 경우 자칫 소송전에 휘말릴 경우 문을 닫아야 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김앤장·태평양·광장·세종 등 대형 법무법인들이 소송팀을 꾸렸거나 꾸리고 있다. 심지어 ‘디지털 소송’ 전문법무법인이 등장할 정도가 됐다.
소송 대란을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대기업,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벌어질 수도 있지만 동네의 작은 1인기업, 택배, 피자, 중국집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영세기업은 복잡한 법 조항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무작정 개인정보를 취급하지 않을 수도 없다. 법 조항을 위반해서 소송을 당할 수도 있고 악의적인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순간 초·중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저작권 소송을 벌인 변호사들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개인적으로야 사생활보호 등 개인정보보호에 따른 기본권 보장이 당연한 것이지만 기업으로서는 생사의 기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과연 찻잔 속 태풍일까. 기업들에는 그러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많은 허점을 노정하고 있다. 법 시행 초기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지적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다.
박승정 통신방송산업부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