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재 분야 원천기술인 폴리머 연구로 유명한 프라운호퍼는 독일 공대생들의 취업 선호도 1위 직장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독일 막스플랑크와 함께 독일 과학기술 개발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연구소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응용기술이다. 18세기 독일의 유명한 물리학자인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를 기려 만들었다. 스펙트럼 분석학의 기초를 이룬 프라운호퍼는 광학유리와 렌즈를 만드는 산업을 발전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독일 전역에 56개소가 컨소시엄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연간 예산은 13억유로(약 2조원)에 달한다. 현재 1만3000여명의 직원이 독일 전역에서 연구하고 있다.
한스 페터 핀크 프라운호퍼 응용폴리머연구소장은 이공계 기피현상은 한국이나, 독일이나 다를 바가 없지만 최근 독일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아지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핀크 소장은 “전자신문 창간 29주년을 축하한다”면서 “한국 교육도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이나 녹색 뉴딜 프로젝트 등에 대해 유치원 때부터 친숙하도록 교육시킨다면 이공계 기피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은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하다. 독일에선 이공계를 선호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서구 국가 젊은이들 또한 일반적으로 과학과 공학을 꺼린다. 이보다는 까다롭지 않은 학문 분야를 선호한다. 독일 또한 일부 공학 및 과학 분야에서 숙련된 인재들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더디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이 가능하면 조기에 과학과 공학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교사에 대한 교육이 잘 이뤄져야 한다. 교사가 공학에 대한 열정을 가져야 한다. 대학과 기업들이 문호를 개방해 아이들과 교사들, 부모들이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포츠담대학과 연계해 아이들에게 과학 수업과 실험 과정을 제공하는 ‘과학의 밤’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과학과 공학을 공부하는 것이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무한한 직업 기회를 열어 준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우선 사회적으로 과학기술과 제조업 분야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한국에 어떤 사회적 제도나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는가.
▲한국은 1980년 이후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세계에서 12번째 규모 국가로 발전했다. 이를 위해 아주 적극적이고 성공적인 경제 정책을 추구해온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경제 발전 덕분에 생활수준 또한 크게 향상됐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지난 수십년 간 독일 경제 발전과 유사성이 있다. 물론 성공을 일궈낸 아시아 국가와 서구 국가 사이에는 역사와 철학에서 오는 방법론적 차이도 있다. 그러나 한국이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모든 교육과정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은 독일과 아주 유사하다. 이 때문에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과학기술 정책도 독일과 유사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프로젝트, ‘제2차(2008~2012) 과학기술 기본계획’ ‘577 전략’ ‘녹색 뉴딜사업’처럼 한국 사회경제 부문의 고속 성장을 유지하는데 목적을 둔 정책들이 그것이다.
-프라운호퍼는 지난 8년간 한국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 한국 연구개발 체계가 갖는 특징이 어떻다고 보나.
▲우리와 협력 중인 전자부품연구원(KETI) 협력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KETI는 지난 20년 동안 세계 유수 전자기술 연구기관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앞으로도 큰 발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 KETI는 한국을 세계적인 첨단기술 슈퍼파워로 전환시키는데 공헌을 해왔고, 한국의 놀라운 발전에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위상을 갖고 있다. KETI는 중소기업과 벤처들이 혁신기술을 확보하고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새로운 벤처 프로젝트를 창안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우리 기관의 지주회사인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 또한 비슷한 목표를 추구하는 중이다. 한국과 독일 양국은 민주주의와 같은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고 근면 성실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 산업의 경쟁우위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일은 과학·제조업 분야에서 국제 사회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미국·영국이 금융업에 집중할 때에도 독일은 제조업을 고수해 왔다. 이 선택이 최근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에도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선택은 어떤 배경에서였나.
▲서구 경제권은 지난 수십년 동안 GDP에서 서비스산업 비중을 늘려왔다. 특히 앵글로색슨 경제권은 금융 서비스 부문에 집중했다. 그 결과 부분적으로는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초래되기도 했다. 반면에 독일 정부는 서비스산업과 제조업이 균형감 있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정책을 이행해 왔다. 독일의 경우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수출 흑자가 이어져야 경제가 발전한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감안했을 때 이를 구현할 유일한 방법은 첨단기술 제품과 고품질 제품을 선도하는 것뿐이었다.
-폴리머가 전자제품에 응용되는 분야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폴리머 기술이 미래를 어떻게 바꿔나가고 있다고 보는가.
▲지난 100년 동안 폴리머는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가정에서도 카펫, 커튼, 식탁보, 가구, 냉장고, 쓰레기통 등에서 폴리머 소재를 찾아볼 수 있다. 전통적인 전자제품의 경우 폴리머는 케이스 소재, 민감한 전기 및 전자부품이나 인쇄 배선 기판 절연·봉합 소재 등으로 쓰였다.
미래에는 폴리머 전자제품 및 광학제품에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대면적 인쇄 연성 OLED는 시장화에 성공할 것이다. OLED를 이용하면 가정은 물론이고 공공건물 외벽에 여러 가지 조명효과를 낼 수 있다. 이를 다양한 크기의 TV 스크린에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한국 유수 기업들은 기존 플라스틱 TV 케이스에 OLED 기반 TV 스크린을 구성,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유연하고 투명한 유기태양전지(OPV) 부품은 태양 에너지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킬로와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운송장비 산업에서는 폴리머 강화 소재를 사용해 차량이나 항공기 중량을 줄이고, 전기자동차에 쓰이는 고용량 전지와 연료전지를 개발할 수 있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생체 활성물질이 풍부한 다공성 구조의 첨단 다기능 폴리머를 사용해 손상되거나 파괴된 신체 조직들을 재생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바이오폴리머와 바이오 기반 폴리머를 응용한 분야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는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낮춰줄 수 있다.
-프라운호퍼에서 최근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분야가 양자점을 이용한 전자부품이라고 들었다.
▲양자점(QDs)은 반도체 소자의 나노입자다. 양자점이란 삼면이 나노 크기다. 반면에 양자 와이어나 양자 우물은 한 면 또는 두 면이 나노 크기다. QDs의 장점은 입자 크기의 전자소자 구조에 있다. 이는 광학 속성에 영향을 미치며, 발광소자나 태앙전지, 이미징 처리와 관련된 광학 제품에 QDs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
광학전자 소자에서도 QDs를 이용할 수 있다. 박막 태양전지의 경우 넓으면서도 크기 조절이 가능한 흡수성과 저렴한 프로세싱 비용 때문에 QDs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QDs는 발광 효율성이 높다. 이 가능성을 이용해 양자LED(QLED)가 등장했다. 이는 대면적 박막 소자로 OLED와 유사성을 갖는다. QDs는 폴리머나 유기발광소자보다 이런 장비에서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들뜬 상태에서 안정성이 더 뛰어나고, 발광 효율성 또한 더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입도를 통해 색상을 쉽게 조정할 수 있으며, 더욱 날카로운 방출을 통해 채도를 개선할 수 있다.
-친환경 분야에서 독일의 약진이 눈부시다. 친환경 분야에 기술 및 산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와 향후 비전은 무엇인가.
▲독일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천연 원자재가 부족하다. 따라서 에너지 및 원자재의 친환경 자원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독일 정부와 정계는 그린경제에 대한 투자를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중요한 천연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미래 산업과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자본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하다. 이는 독일이 세계 주요 수출국으로서 입지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자원 사용을 늘릴 계획이다. 주로 바이오매스와 풍력, 태양에너지다. 구체적으로는 2020년까지 총 전력소모의 3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원자재 생산성은 1994년 대비 두 배로 확대할 방침이다.
한스 페터 핀크 프라운호퍼IAP 소장은
1977년 로스톡대학교 물리학 석·박사
2001년 로스톡대학교 교수자격 취득
1975~1992년 독일 폴리머화학재단 연구원
일본 셀룰로오스학회 학술상 수상(외국인 최초)
2006년~현재 프라운호퍼 응용폴리머연구소장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