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열지 않는 기업의 미래는 닫힌다

 기업의 절대적 지위를 상징하던 ‘사실상 표준(디팩토 스탠더드)’이 진화, 글로벌 산업계에 ‘오픈(OPEN) 생태계’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산업화 이후 디지털시대까지 디팩토 스탠더드의 장악은 곧 성공과 부의 창출로 이어졌다. 글로벌스탠더드 쟁취는 그 자체가 해당 분야 1위를 의미하며 모든 기업의 최종 목표기도 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향한 기업의 도전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하나 더. IT업계를 중심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기반한 ‘오픈 생태계’가 새로운 가치로 급부상하며 지구촌 산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게임의 법칙은 진화한다=OPEN. 열다. 닫히거나 잠긴 것을 트거나 벗긴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그간 기업 생태계에서 ‘오픈’이란 기업 간 전략적 제휴 정도에 머물렀다. 내 것을 진정 ‘오픈’한다는 것은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자된 기술개발(R&D)을 수포로 돌리는 짓과 다름없었다. 대부분 기업이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R&D를 통해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수요자 중심이 아닌 철저한 공급자 중심의 사고를 통해서다.

 시대가 달라졌다. 세계가 급변하고 있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가만히 서 있다는 것은 뒤처지는 걸 의미한다. 기업 생태계 주기가 빨라졌다.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과 제품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기업들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왜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지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알아야 한다. 닫혀 있던 빗장을 걷고 남들에게 내 것을 ‘오픈’하고 남의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열지 않는 기업의 미래는 닫히기 때문이다.

 ◇‘모바일 혁명’으로 촉발된 오픈 생태계=애플 ‘아이폰 쇼크’는 세계 IT 산업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간 글로벌 IT 시장을 선도한 그룹은 하드웨어 제조기업이었다. 이들이 득세하고 있는 시장에서는 ‘오픈’이라는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하드웨어 기업의 기본은 철저한 보안과 비밀 유지였기 때문이다. 핵심 부품의 설계도라도 유출된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인 R&D는 말짱 헛일이 되는 시스템이다. 상생이란 기업이 하청업체에게 일을 맡기는 일방적인 관계가 조성됐을 때 나왔을 뿐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나누는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애플 아이폰의 등장, 그리고 이른바 ‘대박’을 치면서 이런 인식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애플의 휴대폰 사업 부문 매출 구조는 단순하다. 아이폰 판매에서 얻는 수익과 더불어 아이폰에서만 구동되는 애플리케이션(소프트웨어)을 다운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에서 나오는 수익이다. 앱스토어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누구나 앱을 만들어 올릴 수 있다. 애플은 장터를 열고 자릿세를 받지만 앱 종류나 가격 등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과거 하드웨어 기업 마인드였다면 직접 앱을 만들어 가격을 책정하고 배포하며 판매까지 했을 터였다. 하지만 애플은 최소한의 감시 기능만 가동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관망했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는 지난 2007년 앱스토어를 열면서 “앱스토어라는 ‘확실한’ 소프트웨어와 인간의 창의성을 믿었다”고 밝혔다. 진작에 오픈 생태계의 성공을 확신한 것이다.

 오픈 생태계의 핵심은 무엇일까. 애플은 자신의 핵심 자산을 ‘먼저’ 공개했다. 다른 기업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하도록 독려한 것. 내가 가진 카드를 공개한다는 것이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한 셈이다. 이런 ‘착한’ 생태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불과 30개월 만에 30만개 이상의 앱 마켓을 조성한 저력이다. 물론 아이폰 내에서만 구동되기 때문에 안드로이드보다 ‘폐쇄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지만 애플은 가장 먼저 오픈 생태계 비즈니스 모델을 안착시켰다.

 ◇개인, 기업, 그리고 국가를 넘어=오픈 생태계를 촉발시킨 애플 앱스토어는 개인 간 거래로 시작했다. 이런 개인들이 모여 개발 기업을 만들고, 이들 벤처는 다시 기업 생태계를 조성했다. 기업들의 서비스가 인터넷을 통해 글로벌화 되고 국가 간 경계를 허문다. 개인과 기업, 그리고 국가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오픈 생태계’ 장터를 만든 것이다. 끊임없는 선순환 고리를 통해 대규모 참여가 가능해졌다.

 오픈 생태계는 개인이 기업을 넘을 수 있고 기업이 국가를 넘는다. 거대 자본이나 규모에 휘둘리지 않는다. 결정권이 개인 자유의지에 주어진 셈이다. 적은 비용으로 협업할 수 있고 규모가 작아도 아이디어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 더 이상 시장과 기업에 의존하지 않는다. 140자 내의 단문을 실시간으로 올리는 트위터도 시작은 2명이었지만 오픈 플랫폼 하에서 몇 천개의 아이디어가 추가되고 개발자들의 노력이 붙어 지금의 글로벌 거대 기업이 됐다.

 분야도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 처음에는 IT 등 동종 산업 내에서만 이뤄졌다. 이종 산업간 생태계 조성이 막 시작되고 있다. 건설과 소프트웨어, 교육과 엔터테인먼트, 자동차와 통신 등 다른 산업간 오픈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글로벌 완구 제조기업인 레고는 소셜네트워크와 개방형 협력 모델을 이용해 고객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나간다. 레고는 고객에게 자신만의 장난감을 디자인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해 모방제품과 전자게임으로부터 시장지위를 지켜냈다. 현재 레고는 고객들이 가상의 도구를 이용해 3D 장난감을 만들어 자유롭게 웹사이트에 등록하고 다른 이용자들과 디자인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이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개방과 공유, 이젠 오픈 생태계다=구글, 아마존, 이베이, 위키피디아, 페이스북, 트위터 등 최근 21세기를 지배하고 있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개방과 공유’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들은 개방과 공유를 위해 오픈 플랫폼을 제공한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마켓, 이베이는 경매형 장터, 위키피디아는 소셜 지식 문서, 페이스북은 오픈API를 통한 쇼핑몰까지 다채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TV, PC 등 전통적인 하드웨어 기반 제조 기업들도 변하고 있다. 오픈 생태계가 활성화되면서 기기간 장벽이 허물어졌다. 특히 모바일 부문을 중심으로 타 기업과 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반도체, 배터리 등 단말기를 구성하는 IT 부품 분야도 마찬가지다. 위치기반서비스(LBS), 증강현실서비스(AR) 등 의외로 개발된 지 오래된 ‘묵은’ 신기술들도 최근에서야 빛을 발하고 있다.

 오픈 생태계는 끊임없는 신 시장을 창출할 전망이다. 이 생태계가 가장 잘 조성되어 있는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 간 경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게임, 출판, 광고, 유통, 금융, 자동차, 의료, 환경 등 오프라인 중심 기존 산업은 개발 비용을 줄여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생태계 조성을 가속화한다. 컨버전스와 디버전스를 통해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진다. 먼저 선점하는 자가 오픈 생태계를 주도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해결하려는 사고로는 많은 기회를 놓친다. 기업들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이에 맞는 기술을 외부에서 가져옴으로써 R&D 비용을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과거 기업이 새로운 기술개발을 시도할 경우 도움을 받을만한 외부 주체가 마땅치 않았지만 이젠 다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인력과 벤처기업들이 다양해졌다.

 IT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오픈 생태계가 조성되자 창의적인 개발자들의 아이디어가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주춤했던 소프트웨어 시장이 성장한다. 벤처 캐피탈 투자가 늘어난다. 인프라 투자도 증대된다. 선순환 오픈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