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금융계좌신고제 첫 시행..'절반의 성공'

역외탈세 방지의 일환으로 국세청이 올해 야심적으로 추진한 10억이상 해외금융계좌의 자진신고제는 일단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할 만하다.

제도 자체가 처음으로 시도돼 인지도가 낮았던데다 국세청이 개인 납세자의 모수 자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신고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다만 제도의 시행으로 해외금융자산 일부를 파악할 수 있게 됐고 역외탈세를 색출하는 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과는 거뒀다고 볼 수 있다.

국세청은 해외로 돈을 빼돌려 사업을 하면서도 소득을 전혀 신고하지 않거나 수출대금을 차입금 형태로 국내에 반입하는 등의 탈세행위가 여전히 끊이지 않다고 보고 본격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해외금융계좌 첫 신고 의미와 평가

해외금융계좌신고제는 이현동 국세청장이 취임 이후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역외탈세 등 숨은 세원 양성화 정책의 핵심과제 중 하나다.

역외탈세는 단순한 세금탈루 차원을 넘어 국부를 해외로 빼돌린다는 점에서 가장 악질적인 조세포탈행위로 해외금융계좌신고제가 제대로 정착되면 탈세 방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는 거주자와 내국법인이 보유한 해외금융계좌 잔액의 합계액이 1년 중 하루라도 10억원을 넘으면 그 계좌내역을 다음해 6월 관할세무서에 신고토록 한 제도로 소득세법상 거주자와 국내법인이 대상이다.

하지만 국세청이 해외금융계좌 신고접수를 받기 전 10억 이상 해외계좌를 보유한 것으으로 확인한 2천명 가운데 실제 신고한 사람은 10.1%에 불과했다.

211명이 9천756억원을 신고했으니 산술적으로 보면 개인의 해외계좌 보유금액은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나마 재산반출 과정이 투명하게 정상적으로 이뤄졌고 해외원천소득도 신고한 성실 납세자가 신고의 대부분이었다. 법인도 해외 상장기업 인수관련 주식 보유분, 건설회사의 현지사업장 공사대금, 컨소시엄 계좌 등으로 탈법계좌로 보기 어려웠다.

국세청이 목표로 한 `재산반출 과정이 불투명하거나 탈루의혹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른바 `검은 계좌`는 이번에 거의 드러나지 않은 셈이다.

박윤준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은 "신고하여야 할 개인납세자의 모수 추정이 매우 어려웠고 거액 해외계좌 납세자들에게 자기의 계좌를 찾을 것이라는 신뢰를 못준 것 같다"다"면서 "재산 반출과정이 불투명했던 납세자를 계좌신고를 통해 양성화하는 효과가 미미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신고를 통해 그동안 묻혀있던 개인 해외금융자산의 일부가 드러난 점은 성과로 꼽힌다. 그동안 부동산 등 외환관리법에 의한 자산변동은 세무당국이 파악하고 있었으나 금융자산은 제대로 건드리지 못해왔다.

박 국장은 "또 이 제도가 해외금융계좌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 등 처벌을 할 수 있어 역외탈세를 색출하는 툴이 마련됐고 신고자를 종합소득세 신고안내 등 세무당국이 관리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끊이지 않는 해외 재산은닉과 탈세

국세청은 해외금융계좌 신고와 함께 우리와 조세계약을 맺은 76개국과 조세정보교환협정을 체결한 14개 조세피난처 국가들로부터 조세정보자료를 축적, 관리하면서 의심자산을 분석해 왔다.

그리고 1차로 38명을 색출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중 일부는 국세청이 파악한 2천명의 범위 밖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중 자영업을 하는 A씨는 일본에 다른 사람 이름으로 도.소매 법인을 설립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소득을 본인과 배우자 명의의 일본 은행계좌에 숨겨오다 국세청 감시망에 적발됐다.

A씨는 국내에 자신과 아내 이름의 재산을 보유하지 않고 있고 해외금융계좌도 신고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번 돈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호화생활을 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주물 금형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해외공장의 지분을 페이퍼컴퍼니로 이전한뒤 배당소득을 탈세하고 이 돈을 국내에 차명으로 재투자하거나 개인적으로 써 왔다.

또 아들 소유의 계열사로 부품 고가매입 등 일감을 몰아준뒤 이 회사의 지분 80%를 페이퍼컴퍼니로 옮겨 세금없는 부의 대물림을 시도했다. B씨에 대한 추징세액은 1천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소득 전문직인인 박모씨는 해외이주를 신고한뒤 닷새만에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사업을 하면서 벌어들인 돈을 해외이주비 명목으로 송금하고 이 돈으로 자녀 명의의 고가 부동산을 취득하는 등 지능적으로 탈세행위를 저질렀다.

증여세 미신고는 물론 해외계좌 존재 여부도 국세청에 알리지 않았다.

국세청은 이들 업체 및 개인에 대해 세무조사와 함께 강도높은 자금출처 조사를 실시해 법정 최고한도인 미신고 해외계좌금액의 5%를 과태료로 부과하는 한편 탈루혐의가 적발될 경우 형사고발할 예정이다.

◇향후 보완해야 할 과제

해외금융계좌신고제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순히 10억이상의 계좌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과세당국에 신고를 유도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이번 신고결과를 분석해 자진신고에 따른 불편사항을 개선하고 성실신고 유인 및 미신고자 처벌 강화 등 제도적인 부분은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기로 했다.

자진신고자에 대해 가산세를 일부 완화해 세 부담을 덜어주고 일정액 이상, 예를 들어 50억 또는 100억 이상 미신고 계좌에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조항을 법에 담을 수 있는 방안을 재정부에 건의해 놓은 상태다.

현재로서는 해외금융계좌의 불법 여부를 입증하는데 납세자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만큼 조사과정에서 형사처벌 등을 레버리지로 납세자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세청이 국제공조의 틀을 확대할 필요도 있다.

이번에도 드러났듯 국제공조를 통해 국외발생소득과 해외계좌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해외금융계좌를 통해 관리되는 이자.배당소득 자료를 분석 및 색출하는데 상대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탓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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