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정부가 5년간 총 5460억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던 ‘방송장비고도화 사업’ 중 1800억원을 투자키로 했던 ‘수요자 연계형 기술개발’ 사업이 요란한 빈수레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장비 고도화 사업 중 대표적인 중소기업 육성 정책이 흐지부지 된 것이다. 올해 예산 확보에 실패했고, 내년 예산도 불투명해 단기 처방에 그쳤다는 평가다.
29일 방송장비 업계와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중소기업 육성안인 ‘수요자연계형 R&D’ 분야는 지난해 말 1단계 종료 후 예산 확보에 실패해 명목만 남았다. 당초 정부는 2013년까지 이 분야에 정부와 민간이 각각 1350억원·450억원, 총 1800억원을 지원키로 했었다.
이 사업은 지난 2009년 추경예산으로 140억원을 지원 받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단 1년 8개월 만에 끝났다. 올해 이 사업 관련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내년 예산 확보에 대해서도 업계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에 만든 장비 시험인증센터에도 4년간 27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지난해 23억5000만원, 올해부터 3년간 30억원, 총 113억원으로 깎았다. 이마저도 줄어들어 실제로 올해 TTA에 배분한 예산은 지난해와 같은 23억5000만원이다.
맞춤형 수요를 발굴하겠다던 계획도 흐지부지됐다. 지난해 12월에는 ’방송장비 종교계 확산방안 간담회‘에 대형 교회 관계자만 불러 불교계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정작 지금 대형 교회에서는 외산 업체에 방송시설 설비를 의뢰하고 외산 장비를 도입하고 있다.
물론 성과는 있었다. 디지털(D)TV용 중계기 분야에서는 상용 기술을 개발했다. 지상파 방송사가 1000억원 이상을 투입하는 DTV 중계기는 국산 제품이 공급된다. 오로라라이트뱅크의 방송용 발광다이오드(LED) 조명도 국내 방송사에 공급됐다. 마스터의 라우터도 미국 국방부와 공급 계약을 맺는 등 실적을 냈다.
하지만 당시 선정됐던 25개 과제도 5개만 개발을 완료했고 이후 별다른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특히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낸 DTV 중계기는 디지털 전환이 완료되는 내년 말 이후에는 국내에 별다른 수요처가 없다는 게 문제다.
과제 수행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장비 업계 한 관계자는 “외산 완제품을 사와서 포장만 바꿔서 제출하는 사례 등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장비 개발이 1·2년 안에 이뤄지기가 쉽지 않은데 과제 기간이 너무 짧고 후속 과제가 없다 보니 장비를 개발하다가 그만둔 사례도 있다. 좁은 국내를 벗어나 해외 시장으로 수출 길을 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설명이 잇따른다. 스타 기업을 육성해서 해외 수출길을 모색한다는 당초의 취지와는 다른 길을 걸어 온 것이다.
과제 선정에 대해서도 개선점이 지적됐다. 양창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은 “과제를 선정할 때 실수요 보다는 학계의 의견을 많이 참고한 것 같다”며 “실제 현장에 있는 방송기술 인력의 의견을 직접 청취해서 품목을 정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업을 주관하는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상용화 사업은 시범 사업으로 했던 거라 작년 말로 종료키로 했다”며 “방송장비는 신성장동력 7대 과제 중 하나로 육성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송장비 업계에서는 정부의 산업 육성 의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